ELS 사태, 불완전 판매와 일반 손실 명확히 구분해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후폭풍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은행권 통틀어 조(兆) 단위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감독당국의 홍콩H지수 ELS 판매 현황 자료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총 19조3000억원 중 은행에서만 15조9000억원(82.1%)이 팔려나갔다. 상대적으로 고위험 투자 수요가 많은 증권사(3조4000억원)보다 5배 가까이 큰 규모다.
여·수신 업무가 주력인 은행에서 ELS 같이 위험도 높은 상품을 공격적으로 팔아치운 건 수수료 수익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예대마진에 의존한 이자 장사로 질타를 받아온 만큼 비(非)이자 수익 비중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독당국은 현장조사 결과 일부 판매사에서 △ELS 판매 한도 관리 미흡 △핵심성과지표(KPI)상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 관리체계상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은행에 속았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만약 정기예금 대체 상품이라며 ELS를 끼워 팔았다면 사기나 다름없다. 심지어 90대 노인에게 ELS를 권유·판매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일부 창구 직원들의 윤리성까지 의심된다.
관건은 은행들이 상품 설계 구조나 원금 손실 가능성 같은 설명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다. 고객파악과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준수했는지도 따져볼 부분이다. 현장에서 무리한 판매가 이뤄졌다는 게 입증되면 은행의 배상 책임은 불가피하다.
다만 투자 관점에서 봤을 때 무분별한 판매사 배상 요구는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원금 손실과 불완전 판매는 분리해서 보는 게 맞다. 투자 실패의 책임까지 금융사에 전가하는 건 시장 질서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 중 최초 투자 비중은 계좌 수 기준으로 8.6%다. 반대로 보면 90% 이상이 ELS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즉 재투자자다. 짐작하건데 ELS 추종 지수가 활황이었을 때는 수익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본인 선택에 의한 행동을 남이 책임질 의무는 없다. 투자 시장의 자기 책임 원칙이다. 완전 판매를 전제로 했을 때 수익 전망에 대한 최종 판단은 투자자가 한다. 가령 손실이 났다고 하면 투자자의 예측 실패다.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의 경우 실제 은행원 회유에 넘어가 피해를 본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여기에 단순 원금 손실로 분노한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희석돼 사태 수습과 배상 절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경계해야 한다.
감독당국이 이르면 3월 중 배상기준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때보다 냉정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무조건 은행을 악마화해서도, 무조건 투자자 구제에 집중해서도 안 된다. 이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투자자간의 신뢰와도 직결된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불완전 판매 단절과 투자 원칙 정립이다. 이미 늦었지만 은행들의 내부통제 강화 노력이 제고돼야 하고, 투자자들도 자기 책임에 기반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후진적인 판매, 투자 관행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