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직선제로 뽑힌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지역조합 중심으로 '혁신'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17년 만에 직선제로 치러진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강호동 율곡농협 조합장이 당선됐다. 강 당선인은 경제지주 재통합, 지역 농축협 무이자자금 지원 강화 등을 공약하며 조합이 중앙회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 조합에 대한 지원 확대는 조합원과 농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지만, 조합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공약도 다수 내걸어 일선 조합장의 비위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강 당선인은 이달 2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진행된 선거에서 결선투표 결과 유효 투표수 1245표 중 781표를 얻어 차기 중앙회장으로 선출됐다.
강 당선인은 1963년생으로 농민신문 이사, 농협경제지주 이사, 농협중앙회 이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율곡농협 조합장과 한국딸기생산자협의회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강 당선인은 선거 직후 "농협을 혁신하고 변화시키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면서 "각 지역 조합장들과 소통해 지역농협이 주인이 되는 중앙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 당선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도시 농축협 경제사업 활성화 △무이자자금 20조원 조성·지원 △유통손실보전자금·농산물 가격안정기금·품목별 자조금 등 확대 △조곡가격 40kg 7만원 유지·벼수매자금 3조원으로 확대 △친환경농업·로컬푸드 육성 △농축협 하나로마트·경제사업장 개선 △축협 위상 강화·자율성 보장 △인삼 재고 감축·가공공장 활성화 등 100대 공약을 내세웠다.
또 중앙회와 경제지주를 재통합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중앙회는 2012년 농협하나로유통‧남해화학‧농협목우촌‧농협물류 등 자회사를 보유한 경제지주와 NH농협은행‧NH농협생명‧NH농협손해보험‧NH투자증권 등을 포함한 금융지주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이 가운데 경제지주는 독립법인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중복으로 지역조합과 경쟁하게 되는 등 조합원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농축산물 유통과 도매, 영농자재 공급 등의 사업을 고도화해 농민을 돕는다는 본래 목적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강 당선인은 경제지주를 중앙회 사업부로 흡수하고 지역 조합의 조력자 역할을 강화하겠다며 중앙회-경제지주 재통합 공약을 내걸었다. 이는 다수의 후보들도 공통적으로 내세운 공약이다.
다만 농협의 지배구조를 조정하려면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법령 개정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지주가 이미 독립법인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사업구조 개편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병원 제23대 중앙회장도 2016년 선거 당시 경제지주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결국 이행하지 못했다.
농업계에서는 경제지주를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회 산하가 아닌 조합장들이 참여하는 독립기구를 만들어 조합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법안 개정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강 당선인은 '상호금융 독립법인화'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상호금융을 독립시켜 제1금융권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호금융부문은 농협중앙회에 종속된 사업부서다.
상호금융이 독립하게 된다면 농협중앙회 위주가 아닌 수익률 위주의 투자도 가능해져 수익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조합장의 비위 문제 역시 해결 과제로 꼽힌다. 농협은 지역 조합장의 비위 문제가 이어지면서 신뢰도가 크게 저하된 상황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 횡령 등으로 징계를 받은 조합장은 66명이다. 이들 가운데 48.5%는 견책 처분, 21.2%는 직무정지 1개월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강 조합장은 조합장에 대한 법률지원 강화, 조합장 직무정지 최소화, 조합장 연봉하한제 등 조합장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약을 다수 내걸었다. 이에 오히려 비위행위를 저지른 조합장에 대한 처벌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상향식으로 만들어진 해외의 농협과 달리 한국의 농협은 국가가 하향식으로 만든 조합이어서 중앙회장과 지역 조합장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면서 "농협 개혁의 역사는 이 권한을 분산시키고 조합원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반영하려는 노력의 역사"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장의 권한이 비대해 발생하는 문제가 많은 만큼 조합장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개혁의 방향에서 멀어지는 일"이라며 "비위를 저지른 조합장에 대해 적절한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