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최대 경영권 분쟁, 풍운아 임종윤 승리할까
[뉴스투데이=최정호 부장] OCI홀딩스와 통합 발표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 같은 한미약품그룹이 경영권 싸움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모자간 경영권 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 임성기 전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OCI홀딩스와 손잡고 통합지주사를 출범하자 장남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이 반기를 들어 정면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임 회장은 남동생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과 연대해 지분율을 51% 이상까지 끌어 올려 경영권을 확보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임 회장은 통합지주사 출범에 대해서도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통해 풀겠다고 장담하고 있어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불가피하다는 게 제약업계의 중론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임 회장이 우호지분 확보 최대 변수인 임종훈 사장과 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연대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가족기업 '한미약품그룹' 쪼개지나…송영숙 회장 60.98%, 임 회장 "51% 확보가 목표"
한미약품그룹과 OCI의 홀딩스의 통합이 완료되면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는 OCI홀딩스로 바뀌고 지분율은 27%가 된다. 송 회장이 12.56%, 임종윤 회장 9.91%, 임주현 사장(차녀) 7.29%를 각각 보유하게 된다. 또 임종훈(차남) 사장이 10.0%를 보유한다. 이밖에 고 임성기 전 회장 일가친척들이 각각 1~2%씩 갖는다.
임성기 전 회장 일가 지분을 제외하면 국민연금이 7.3%를 가진 대주주이며 신동국 회장이 11.52%를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은 임성기 전 회장의 고교후배로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외에도 7.72%의 한미약품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임 회장이 임종훈 사장과 연대하면 보유지분율은 20.47%다. 여기에 신 회장까지 힘을 보태면 임회장 우호지분은 31.99%가 된다.
반면,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9.82%이다. 한미사이언스 산하 가현문화재단(4.90% 보유)과 임성기 재단(3.00% 보유) 보유 분 7.9%가 송 회장 우호 지분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이번 OCI홀딩스와 주식 맞교환을 성사시킨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 지분 6.26%도 있다. 이들 지분율을 모두 합하면 33.98%로 모두 송 회장 우호 지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임 회장과 송 회장 간 지분율 격차는 1.99%에 불과하다. 임 회장이 일가친척의 우호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바뀔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분율 격차다.
그러나 이번 지분 맞교환으로 최대주주가 된 OCI홀딩스가 송 회장 편에 설게 유력한 상황이라는 게 최대 난관이다. 이렇게 되면 송 회장 포함 우호지분은 60.98%가 된다. 국민연금이 임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지분율은 아니다. 임 회장이 "지분율을 51%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임 회장에게는 사모펀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금을 지원 받아 시장에 나와 있는 소액주주들의 물량을 매집하는 방법이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라데팡스파트너스의 보유분을 고액으로 매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대책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 최대변수 '유상증자 통한 지분 맞교환', 임 회장 가처분 신청…법정공방 장기화 가능성
임 회장은 최근 일부 언론에 "한미약품그룹과 OCI홀딩스의 통합 지주사 출범은 기업 합병 수준"이라면서 "특별주주총회를 거쳐 승인 받았어야 하는데 모든 걸 뛰어 넘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마디로 절차가 적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임 회장이 이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 계약이 당사자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라데팡스파트너스 외에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지분 맞교환을 통한 통합지주사 출범은 한미약품그룹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특별주총을 거쳤어야 하는데 별도의 주주총회 없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독자 결정했다. 계약 과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계약의 적법성을 따져보자는 임 회장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임 회장과 임종훈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주주 중 한 명이다. 유상증자에 따른 지분율 변화를 직접 체감한 적이 있다. 또 임 회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이사회 일원이다. 임 회장이 이번 계약을 몰랐다는 것은 의외라는 게 지적도 있다.
한미약품그룹은 선을 분명히 그어놓았다. 한미약품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통합 절차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이라면서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한미약품그룹은 "임종윤 사장이 대주주로서 이번 통합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만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해 이번 통합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약품그룹의 해명에도 송 회장과 임 사장의 독단적 경영 행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이 한미사이언스의 계열사로 매출 전반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지주사가 바뀌는 것은 경영에 있어 중대한 사항이다. 한미약품 이사회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기업의 명운을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맡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 회장이 가장 큰 문제로 삼는 것은 제 3자 배정 유상증자 단행이다.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구주 18.6%를 OCI홀딩스에 매각한 것은 개인 보유 물량이어서 법‧도덕상으로 문제될 게 없다.
신주 8.4%를 발행하는 3자배정유상증자(2400억원)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너2세 간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최대주주가 바뀌는 민감한 유상증자는 하지 않는 게 업계 관행인데 이를 어기고 단행됐다.
임 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 법적 판단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승소 가능성은 있을까? 현재로서는 희박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사외이사 3명 중 2명이 법률 전문가다. 신유철 사외이사(변호사)는 검사 시절 경제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또 김용덕 사외이사(변호사)는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지냈고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 기업법연구소장으로 있다. 이처럼 쟁쟁한 기업 분야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송 회장은 통합지주사 출범을 밀어 붙였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모자간 법적 분쟁은 장기화할 공산도 크다. 더 큰 문제는 법적 분쟁 발생으로 한미약품그룹이 받을 부담이 클 것이라는 점이다. 소송에서 송 회장이 패소할 경우 OCI홀딩스가 발행한 신주 8.4%가 무효화된다. 송 회장의 우호지분 8.4%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임 회장에겐 유리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임 회장은 패소해도 당장은 크게 손해될 것은 없다. 항소하면 되고 법정 싸움이 길어질수록 우호지분을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후 주주총회를 통해 송 회장과 임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키고 임 회장이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면 된다. 그래도 깊은 상처를 받은 한미약품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은 피하기 어렵다.
■'풍운아' 임종윤 회장의 경영권 싸움...상송세 묘수도 찾아야
경영권 분쟁의 시동을 건 임종윤 회장은 한미약품그룹에서는 풍운아였다. 임성기 전 회장은 생전 임종윤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그룹경영 일선에선 배제된 장남이었다.
임 회장은 지난 2000년 과장으로 한미약품에 입사해 2022년 3월까지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임성기 전 회장이 사망한 이후 어머니 송 회장과 각자대표 체제로 한미사이언스를 이끌었다. 그는 지난 2022년 3월 한미사이언스 사내 이사 임기 만료 후 재선임되지 않았고 한미약품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임 회장이 물러나자 송 회장은 둘째인 딸 임주현 사장을 신뢰했다. 한미약품그룹의 승계자가 임주현 사장으로 굳어졌다는 소문이 많았다. 장남이 밀려나고 둘째가 득세한 상황이라 오너 2세 간 경영권 분쟁은 언제든 터질 상황이었다.
이번 경영권 싸움의 밑바닥에는 '상속세'라는 폭탄이 있다. 임 전 회장 사후 세 자녀는 각각 1000억 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연부연납제도로 5년간 분할 납부하는 것인데 이들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분을 팔아 세금을 내려 했는데 불똥이 경영권 분쟁으로 튀고 있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