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대표이사 셀프 연임, ‘사외이사’제도 대수술해야 막는다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담배회사 KT&G의 사외이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내외에서 높다. 사외이사 시스템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백복인 대표의 4연임이 가능한 상황이 조성됐다는 지적이 따갑다. 백 대표가 용퇴하기로 해 4연임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현행 사외이사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이상 같은 사태가 얼마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가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KT&G의 사외이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지난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백 대표가 3연임 가능성이 제기되자 일부 주주들은 "백 대표의 사람이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어 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은 비단 KT&G만의 일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외이사들이 오너나 회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임 없이 있었다. 경영진을 보호하는 '참호(塹壕)'를 충실히 하고 있거나 회장의 말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로 전락한 사례가 비일비재 했다. 사외이사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타 기업은 다단계 영업과 같은 방식으로 '사외이사' 장악
현재 KT&G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이사회는 8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백 대표와 방경만 수석부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사외이사다. 또 1명의 여성 사외이사가 포함돼 있는 등 겉으로는 이상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대표이사가 6명의 사외이사를 포섭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는 게 문제다. 밀실 경영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에서 회장 연임 논란에 생겼을 때마다 사외이사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회장의 거수기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것이다. 경영진에 우호적인 인사로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것이다. 경영진을 보호하는 '참호'를 판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들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참호를 파는 수법은 다단계 업체의 영업 방식과 비슷하다. 즉 자기편에 설 사외이사 1명을 기용하고 이 사외이사가 1년 후 다른 사외이사 1명을 추천하도록 한다. 이후 그가 사외이사추천위원회 위원장이 돼 사외이사를 집적 뽑았다. 일부 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해 주주추천 사외이사가 있었지만 주주총회에서 이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KT&G의 경우 지분 0.5%를 보유한 '안다자산운용'이 지난해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 2명을 추천했다. 당시 박철홍 안다자산운용 대표가 일부 언론을 통해 "KT&G가 사외이사를 이용해 대표이사의 셀프 연임을 가능하게 했다"고 비판했을 때 그는 사외이사의 맹점을 적확하게 꼬집었다.
■ 베일 싸인 '써치펌' 통한 추천과 두둑한 보수
경영진이 사외이사 참호를 파는 방법은 또 있다. '써치펌'을 통한 불투명한 추천과 고액 연봉이다. 사외이사추천위원회가 주주를 중심으로 사외이사를 추천 받아 전문가 위주로 제안하거나 계열사 사외이사 중 연임한 인물을 데려 오는 것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KT&G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가 '헤드헌트' 기업에 사외이사 섭외를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T&G는 헤드헌트 의뢰는 부인하면서 '써치펌'이라는 기구가 있다고 해명한다. 써치펌이 정확하게 어떤 기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KT&G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써치펌이 제안한 후보자 중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 최적격자와 주주의 권리로 제안한 후보자를 주주총회에 사외이사 후보자로 추천한다"면서 "후보 추천 과정부터 독립성과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T&G가 사외이사들에게 지급하는 보수도 다른 기업에 견줘 두둑하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KT&G의 사외이사 1인 평균 연봉은 9600만 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사외이사의 6개월 급여 평균은 5100만 원이었다. 지난 2022년 KT&G는 5조851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문제는 영업이익 5조8880억원을 낸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 1인 평균 연봉 7800만원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2022년 84조7502억원의 매출액을 냈는데 사외이사 1인 연봉은 1억200만원이었다. KT&G에 비해 그렇게 많이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 2022년 매출 302조원을 올린 삼성전자나 142조원을 달성한 현대자동차의 사외이사 1인 평균 연봉은 1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KT&G 사외이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 사외이사, 공정성‧투명성 제고할 수 있을까
주주총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기업의 기구는 이사회 뿐이다. 이사회가 결정하고 주주총회 승인을 얻으면 어떤 안건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사회를 장악한다면 최고경영자(CEO)의 셀프 연임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KT&G도 최근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어 '셀프 연임' 논란은 억울한 일일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KT&G 대표이사 선발 자격이 'KT&G 전무이사 이상 또는 KT&G 현직 대표'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먼 과거의 일이다. 또 KT&G는 지난해 12월 '연임 우선 심사 원칙' 조항을 삭제했다. 이전까지는 사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면 그를 우선 심사할지 이사회에서 결정했었다. 이사회는 이 조항을 삭제해 다른 후보군에게 균등하게 기회를 줬다.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서 이사회 권한도 축소됐다. 이전에는 지배구조위원회가 사장 후보자를 물색하고 추천했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를 심사해 이사회에 추천하면 이사회가 검토 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는 방식이었다. 지배구조위원회와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현직 대표이사 대신 다른 인물을 추천할 경우 이사회가 반려할 수도 있었다. KT&G는 올해부터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주주총회로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에도 남은 것은 사외이사의 구성 문제다. 경영진을 보호할 참호를 파는 인사가 아니라 KT&G를 보호할 굳건한 참호를 파는 사외이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뽑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만 상장기업 KT&G가 CEO 임기가 다할 때마다 홍역을 치르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