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남침전쟁 횡성·대우산·별고지 전투의 영웅 네덜란드군(하)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횡성전투를 마친 네덜란드대대는 미 제2사단의 일부로 중동부지역 대암산~도솔산 부근 전선에 투입됐다.
대우산 전투는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대우산을 점령하기 위해 조공 부대로서 북한군 제27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중에 남쪽 1120고지(대머리산)을 공격해 탈취한 전투이다.
1951년 7월 15일 네덜란드 대대는 1개월 간 부대 재정비 후 미 제38연대에 배속돼 양구 북쪽의 도솔산으로 이동했고 7월 25일까지 적의 중대규모 병력이 배치돼 다수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1120고지를 정찰했다.
7월 26일 07시30분경 네덜란드 대대 C중대가 주저항선 전방의 만정곡으로 이동해 공격 개시 후 10시 30분경 돌격선에 진출했지만 안개가 걷히며 중대가 적에게 노출되고 적이 C중대를 향해 기관총사격을 집중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사상자가 증가하고 위험해지자 고지 중간지점으로 철수했다. 이때 좌전방으로 우회 공격한 일부 병력이 고참병들의 투혼으로 1120고지로 진출해 적의 진지 일부를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C중대가 부대정비 후 재공격을 준비했으나, 오히려 적에게 발견돼 역습당했고, 점점 부상자가 속출해 어두운 밤이지만 연막과 야간을 이용해 철수했다.
이후 7월 29일 미군 1개 대대가 공격을 주도하고 네덜란드 대대는 조공으로 전진하며 미군에 대한 화력을 지원했는 데 결국 대우산을 점령했다.
내덜란드 대대는 대우산의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경기관총으로 증강된 소대규모를 1120고지로 투입했으나 8월 6일즈음 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대대는 사단예비로 전환돼 소양강변의 관대리로 이동하며 전투를 마감했다.
대우산 전투에서 네덜란드 대대는 전사 11명, 부상 31명, 실종 1명의 인명손실이 발생했다.
■ 별고지 전투에서 네덜란드 대대는 완벽한 공격작전으로 중공군 완전 섬멸
별고지 전투는 1952년 2월 18일 네덜란드 대대가 평강 남방 10km 지점에 위치한 중공군의 전초진지인 별고지(430고지)를 공격해 포로를 포획하고 방어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고 각종 가용 지원화력의 엄호하에 공격을 전개한 전투이다.
그해 2월 5일 미 제2사단 제 38연대 예비로 전환한 네덜란드 대대는 철원 동쪽의 하리동에 집결했고, 2월 10일~15일간 적 유인 작전인 유엔군 ‘Calm Up’ 작전이 실패하자 네덜란드 대대는 사단장으로부터 중공군 주요 전초진지인 별고지를 기습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별고지는 2개 소대규모 중공군이 배치돼 있었고, 고지 후방에는 중대규모의 증원 병력도 있었다. 이들은 후방 472고지 일대에 구축한 강력한 지원기지로부터 화력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대는 3개 포병대대, 4.2인치 중박격포 2개 중대, 전차 2개 중대, 부상자 및 탄약운반을 위한 노무자 70명과 화염방사기, 방탄복까지 지원받았다. 적진 항공정찰을 통해 전투 계획을 수립한 대대장은 2월 17일 대대 간부들을 집합시켜 경사지에서의 신속한 이동을 강조하며 작전명령을 내렸다.
2월 18일 04시 B중대가 출발했다. 05시 엄호소대가 주저항선을 통과해 지시된 무명고지를 점령하며, 06시 15분 후속하던 주공인 2개 소대가 공격개시선으로 진출해 모든 공격준비를 완료하자 06시 45분부터 예정된 공격준비사격이 별고지 일대에 집중됐다.
드디어 07시 B중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고, 포병의 오폭으로 잠시 공격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지만. 우일선 소대는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별고지를 점령했다.
07시 30분경 472고지 방면으로 철수하는 적을 포병과 전차가 집중포격 실시해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09시경 연대장 지시에 따라 벙커 3개와 다량의 포탄 및 지뢰 등을 폭파하고 화력 엄호를 받으며 저항선으로 복귀하며 전투를 종료했다.
이번 별고지 전투로 5명이 전사하고 29명이 부상당한 네덜란드 대대는 중공군 1개 중대 이상을 완전 섬멸시키는 대성과를 올렸다.
■ 네덜란드군의 용감성과 자유수호에 대한 의지는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있는 원동력
참전기간 동안 1개 보병대대와 1척의 구축함 또는 프리깃함을 파견한 네덜란드는 기간 중 연인원 5,322명을 한국전선에 파견했다. 교대로 투입된 해군 함정의 경우 에베르센호 237명, 반 가렌호 247명, 피엣 헤인호 237명, 반 나소호 183명, 두보아호 209명, 반 지질호 209명, 기타 임무 28명이 참전했다.
횡성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 및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20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명이 포로가 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부상자 중 292명은 원복을, 262명은 예편했으며, 91명은 불구가 됐다.
1953년 10월 1일 네덜란드 대대는 그간의 전공으로 인해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이에 앞서 대대는 횡성-원주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높이 치하하는 미국 대통령의 부대표창을 1951년 8월 9일 밴 플리트 대장으로부터 수여받기도 했다.
이와 같이 네덜란드 대대는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기간 중에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비롯한 3회 부대표창과 156회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또 네덜란드정부의 The Cross for Justice and Freedom의 영예를 차지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국내외의 군사적인 사정으로 지상군의 파병이 불가한 형편이었으나, 많은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참전을 촉구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파병이 가능하게 됐다.
네덜란드는 다른 참전국과는 달리 민간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참전을 촉구해 파병을 결정한 것에 의의가 있으며, 6·25남침전쟁을 통해 네덜란드 국민이 보여준 용감성과 자유수호에 대한 의지는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자유세계를 결속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따라서 지난달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네덜란드를 방문해 추진한 ‘국제보훈 교류·협력’ 행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으며, 또한 국내에서 참전용사를 초청해 횡성 참전기념비에서 개최하는 추모행사도 매년 지속되며 네덜란드군의 참전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