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우리은행이 기업대출 시장 공략을 위한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경쟁 은행의 공격적 영업에 밀려 하락한 점유율을 2027년까지 1위로 올려놓겠다는 포부다. 과거 우리은행의 상징이었던 ‘기업금융 명가(名家)’ 재건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은행권이 가계대출 중심의 ‘이자 장사’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커진 만큼 기업대출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우리은행이 추격의 고삐를 당긴 만큼 KB국민·신한·하나은행도 영토 확장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 우리은행 “2027년 점유율 1위”···‘10대 과제’로 기업대출 확대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4대 시중은행 중 4위로 내려앉은 기업대출 점유율을 오는 2025년까지 2위, 2027년까지 1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최근의 점유율 하락은 한정된 자본 내에서 효율적인 자산 성장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기준 135조7000억원(말잔) 수준인 기업대출을 △2024년 말 159조9000억원 △2025년 말 181조7000억원 △2026년 말 207조40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제시했다. 이 목표대로라면 현재 5:5 수준인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비중이 2027년 6:4로 재편될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이를 위해 △미래성장 산업 지원 확대 △차별적 미래 경쟁력 확보 △조직·인사 등 최적 인프라 구축 등 3가지의 큰 틀로 구성된 ‘10대 핵심 추진 과제’를 가동한다. 기업금융에 강한 역사적 전통과 전문 역량을 바탕으로 기업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단 목표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7 대기업 여신을 약 15조원 증대하고, 2028년까지 중견기업에 총 4조원을 지원한다. 방산과 이차전지, 반도체 등 신성장 산업에 매년 4조원의 금융 지원이 이뤄진다. 공급망 금융 플랫폼 고도화와 항공결제 시장 진출 등의 수익 모델도 발굴한다.
또 금융 수요가 많은 지역에 특화채널을 신설하고, 현장 중심의 인사 체계 강화 및 인센티브 확대도 병행한다. 아울러 신성장 산업 전담 심사팀을 꾸려 심사의 속도와 건전성을 동시에 강화하겠단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 작업의 효과로 매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이 각각 30%, 1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 8월 기준 지난해 말 대비 성장률은 대기업이 19.7%, 중소기업이 2.52%로 나타났다.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은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어온 기업금융 명가 은행으로서, 필요한 곳에 돈이 흘러들어가게 하는 금융 본연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가계→기업’ 은행권 전장 이동···영토 경쟁 본격화할 듯
기업대출은 대부분 은행들이 중요한 먹거리로 삼고 있는 분야다. 가계대출의 경우 각종 규제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자 장사’ 비판도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올 8월 가계대출이 지난해 말 대비 약 1조원 역성장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기업대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 2분기 원화대출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 55.4% △신한은행 54.7% △국민은행 50.6% △우리은행 49.7%다. 종합적으로 전분기 대비 0.5~2.0%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우리은행이 4년 뒤 ‘업계 1위’ 목표를 내세운 만큼 경쟁 은행들도 분주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은행권에선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가기 어려운 만큼, 향후 실적 경쟁은 기업대출 증대 여부에 따라 좌우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금 수요가 높은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신한은행이 전통 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국민·하나·우리은행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은 넓은 고객군과 여신 증대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물론 ‘큰 손’인 대기업 대출도 공략 대상이다. 보통 계열사들의 수요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선 ‘알짜’다.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회사채 발행 환경이 악화되면서 은행을 향하는 대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은행권에선 기업대출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잠재 리스크는 경계하는 분위기다. 특히 경기 부진이 본격화할 경우 중소기업 대출 중심의 연체 등 잠재 부실 우려가 제기된다. 자산 건전성 악화는 손실 흡수 비용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익성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기업 고객을 모시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신뢰와 노하우 같이 은행의 역량이 집중된다.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은행 차원의 산업 지원이나 상생 정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사실상 대형 은행들이 기업 영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상황이라 파격 금리 같은 마진 축소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