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연계채권' 국내 첫 상장…ESG 투자 경로 확장

임종우 기자 입력 : 2023.07.13 07:13 ㅣ 수정 : 2023.07.13 07:13

현대캐피탈, SLB 총 2200억원 규모 발행
‘친환경차’ 목표 실패시 0.02%p 프리미엄
2021년 당국 SLB 도입 첫 논의 후 2년만
오남용 우려 有…“기반 여건·과제 산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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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리픽]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연계채권’(SLB)가 채권 시장에 상장됐다. 2021년 금융당국이 처음 도입을 논의한 지 거의 2년 만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ESG 채권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커지는 가운데, SLB가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의 선택지도 더 많아졌다.

 

SLB는 기존 ESG 채권과 다른 특유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이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활성화돼있는데, 후발주자인 국내 시장도 관련 시스템 구축 등 빠르게 뒤쫓기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SLB가 자칫 기존 목적과 동떨어져 잘못 활용될 수도 있는 만큼, 도입 초기에 유관기관들이 정확한 기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 현대캐피탈, 국내 ‘1호’ SLB 발행…SPT에 ‘친환경 차 할부 비중’ 제시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현대캐피탈이 발행한 2200억원 규모 지속가능연계채권이 채권 시장에 상장됐다.

 

해당 채권은 만기에 따라 총 5종목으로 구성됐으며, 구체적으로 △1년 6개월물 2종 800억원 △2년물 700억원 △3년물 600억원 △4년물 100억원 등이다. 표면이자율은 △1년 6개월물 4.270% △2년물 4.324% △3년물 4.414% △4년물 4.429%로 설정됐다.

 

ESG 채권 중 한 종류인 지속가능연계채권은 발행사가 발행 단계에서 ESG 핵심성과지표(KPI)에 기반한 지속가능성과목표치(SPT)를 설정해 해당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이자율과 만기상환금액 등 재무 및 구조적 특성이 달라지는 채권이다. 일반적으로 달성 실패 시 투자자에게 프리미엄이 지급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SLB 발행사가 온실가스 배출을 일정 수준 이상 감소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이를 달성하면 보상으로 발행 금리가 유지되거나 내려가지만, 달성하지 못할 경우 금리 상향 등의 벌칙을 받는 식이다.

 

현대캐피탈은 ‘친환경 차 할부 비중 확대’를 이번 채권 발행의 지속가능성과 목표로 제시했다.

 

전체 자동차 할부금융 취급 건수 중 전기차 등 친환경 차 비중을 2022년 12%에서 매년 1% 늘려 2026년 16%로 설정하고, 만기의 전년도 말까지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투자 기간에 연 0.02%포인트를 곱한 프리미엄을 투자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발행액이 100억원이고 만기가 3년인 채권의 경우, 사전 설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600만원을 최종 사채권자별로 보유 비율에 따라 만기에 추가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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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지속가능연계채권 지속가능성과목표치. [자료=KB증권, 표=뉴스투데이]

 

지속가능연계채권은 대규모 ESG 관련 프로젝트가 필요한 기존 ESG 채권과 달리 관련 프로젝트가 없는 기업도 별도로 설정된 목표를 기반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ESG 프로젝트와 연결된 비용이 비교적 낮은 산업군의 참여도 다른 ESG 채권보다 쉬운 편이다.

 

또 목표 달성 실패에 따른 벌칙 조항이 있는 만큼, 기업이 제시한 목표가 모두 달성된다면 일반 채권보다 비교적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이번 현대캐피탈의 SLB는 발행사 평균 금리 대비 5.9~11.3bp(1bp=0.01%) 낮은 금리로 발행됐다.

 

최효정 KB증권 연구원은 “지속가능연계채권은 다른 ESG 채권과 달리 사후 관리를 통해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검증 과정을 포함하면서 발행에 따른 기대 효과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이를 통해 그린 워싱(위장 ESG)을 방지할 수 있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이번 현대캐피탈의 SLB는 국내 최초 발행인 만큼 녹색 프리미엄을 받아 조달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며 “현대캐피탈이 지난달 발행한 일반 채권의 경우 발행사 평균 금리 대비 높게 발행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 첫 도입 논의 후 약 2년만…“오남용 등 부작용 줄일 기반 마련해야”

 

이번 지속가능연계채권 발행은 2021년 8월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지 약 2년 만이다.

 

2021년 8월 금융당국은 서울정부청사에서 제4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친환경·포용·공정경제로 대전환을 위한 ESG 인프라 확충방안’을 발표했는데, 그중 지속가능연계채권 도입을 중기적 과제로 제시했다.

 

이어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8월 ‘SLB 도입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사회책임투자채권(SRI)에 지속가능연계채권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초까지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채권 시장 전반이 위축된 영향으로 국내 첫 지속연계가능채권 출시도 미뤄져 왔다.

 

앞서 지난해 10월 CJ제일제당이 3년물 공모채 2000억원어치를 지속가능연계채권으로 내놓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당시 금융시장 환경과 지속가능연계채권의 생소한 개념 등을 고려해 검토안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간 논의만 되던 지속가능연계채권의 첫 발행 사례가 나타나면서 ESG 투자 시장에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기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채권 발행의 자유도가 다른 ESG 채권보다 높은 만큼 오남용될 위험도 주시해야 한다는 우려가 있다.

 

지속가능연계채권은 환경 관련 프로젝트가 준비돼 있지 않거나 여력이 안 되는 기업도 발행할 수 있어 자금 조달이 쉽지만, 모집된 자금이 궁극적으로 ESG와 무관한 프로젝트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산하 시장분석기관 BNEF(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행된 지속가능연계채권 111개를 조사한 결과, 약 4분의 1은 지속가능성과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높은 이율을 적용받아야 하는 경우 미리 채권을 상환해 패널티를 피할 수 있는 부대조항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권 발행 후 기업이 목표치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 조항 사례도 발견됐으며, 목표 달성 실패에 따른 불이익이 미미하게 설정된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지속가능연계채권의 인센티브는 지속가능성과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도 패널티가 적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않는 것이 발행자의 재무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될 수도 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초 발간한 지속가능연계채권 관련 보고서에서 “SLB의 국내 도입은 녹색채권 발행과 민간기업 참여가 부족한 국내 ESG 채권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하지만 SLB가 국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갖춰야 할 기반 여건과 극복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고 진단했다.

 

최 연구위원은 “우선 핵심성과지표와 지속가능성과목표치 설정을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마련돼야 한다”며 “그린 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올바른 채권 설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발행을 계획하는 국내 기업은 명확한 ESG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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