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것보다 얻는게 많다” 역대급 엔저 즐기는 일본
올들어 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원화는 상대적으로 덜 떨어졌다. 엔화가 2015년이후 8년만에 역대급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중국 위안화 역시 달러 대비 7.2위안까지 내려가 1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현대경제에서 환율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수출전선에서 일본, 중국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한국은 환율전쟁에서 밀리면서 자칫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환율하락을 대하는 한중일 3국의 입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정승원기자] 현대경제에서 환율은 수출입 가격경쟁력을 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기업실적이 증가하는 반면 수입물가를 자극해 국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린다. 반면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는 반면, 수입물가가 낮아져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속성을 갖고 있다보니 많은 국가들은 환율을 자국에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미국 재무부가 정기적으로 주요국 환율을 모니터링하며 환율을 인위적으로 자국에 유리하게 조작하는지, 혹은 정책당국이 인위적인 시장개입을 단행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체크하여 매년 해당국가에 심층분석국가, 관찰대상국가 등의 멍에를 씌우는 것도 환율이 갖는 이런 본성 때문이다.
미 재무부의 3가지 평가 기준은 ▲상품과 서비스 등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 중 8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달러 순매수 등이다. 미 재무부는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교역 파트너에 대해 3개 기준에 모두 해당하면 심층분석국, 2가지만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일본은 3개 중 1개(대미무역흑자)만 해당되어 관찰대상국에서 빠져 있다.
최근 일본엔화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엔화는 작년 9월과 10월 달러화 대비 150엔까지 내려갔다가 일본당국의 긴급 개입으로 작년말 130엔대까지 다시 올라갔는데, 올해들어 다시 빠르게 하락해 140엔대 중반까지 내려간 것이다. 작년 9월과 10월 일본당국은 68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가파른 환율하락을 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엔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금리차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작년 6월부터 10차례 연속해서 금리를 올리는 등 공격적인 금리인상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반면 일본중앙은행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고집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의 일본의 금리차는 5%를 넘어섰다.
돈이 높은 금리를 쫓는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본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가 미국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많은 돈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엔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애써 환율하락을 막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9월처럼 너무 가파르게 환율이 떨어지지 않는한 적극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환율하락이 일본경제에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엔화는 달러 대비 144.3엔을 기록하며, 상반기중 10.2% 하락했다. 2015년 이후 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엔화약세로 인해 일본기업들은 높아진 수출가격경쟁력으로 실적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주가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증시는 역대급 호황을 즐기고 있다. 올 상반기 토픽스 기준 33개 전 업종이 상승하는 등 1990년 이후 33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는 관광객의 비약적 증가다. 역대급 엔저로 인해 일본을 찾는 관광객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 1∼5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863만85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한국인은 258만3000여명으로 전체 방일 외국인 중 29.9%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