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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1)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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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3.05.26 15:06 ㅣ 수정 : 2023.05.30 13:14

사고발생 30년이 지나서 당시에 많은 동기생들이 피해를 입은 세명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
청와대 이문석 동기는 정확한 조사를 경찰에 요구, 해 지역 부대의 승장래 동기는 중환자실에 무장 헌병 배치
잔인한 4월이지만 많은 동기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뜨거운 동기애를 느끼게 한 소중한 추억으로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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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로 이동시에 탔던 차종이 같은 티코 승용차의 사고모습과 사고 발생지역 부근에 있는 팔달천교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훗날 필자의 교통사고 뒤처리를 위해 애를 썼던 육사 동기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커브길 중앙선을 넘어 진해로 내려가던 우리들이 탄 티코승용차를 정면충돌한 차는 다행히도 대형이 아닌 엑셀이라는 소형차였다.

 

운전을 했던 필자는 충돌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찌그러진 차속에 끼여 갖혀있었고, 조수석의 이재준 동기는 갈비에 손상을 입었으나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사고발생 후 급하게 달려온 레카차와 구급차는 차속에 갇혀있는 필자를 문짝을 띁어내고야 빼어낼 수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재준 동기는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던 경찰에게 뒷좌석에 또 한명이 타고 있었다고 전했고, 충돌의 충격으로 뒷좌석 차문이 열리면서 우측 팔달천변으로 떨어졌던 김종완 동기를 찾았는데 그는 허리와 갈비 등에 손상을 입었으나 강한 정신력으로 팔달천변 가드레일 밑으로 기어나오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날 새벽 군부대의 헌병속보에는 진해 육군대학 대대장반 교육중인 중령진급자 예정자 3명이 대구 팔달천변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1명은 뇌사, 2명 중상이라는 내용으로 전파됐으며, 뇌사상태는 필자를 지칭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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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진탕, 횡경막/비장 파열과 골반/대퇴부 골절 등 11가지의 병명으로 대구가야기독병원에 입원했던 필자와 유사한 환자 모습 [사진=김희철]

 

진해 육군대학 대대장반 교육중인 중령진급자 예정자 3명이 교통사고로 1명은 뇌사, 2명 중상

 

사고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나서 필자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이 옆에서 간병하고 있었는데 천장, 벽 그리고 붕대를 칭칭 감은 필자의 몸까지 온통 하얀색이라 이미 저승에 와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주변을 인식하자마자 곧 또 의식을 잃었다.

 

당시 필자는 골반 및 치골은 전위골절, 대퇴부는 분쇄골절, 늑골8·9번 골절, 좌5족지 골절, 횡경막·비장 파열, 뇌진탕, 혈복흔 등으로 병명만 세어봐도 11가지인 중태 상태로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누가 흔드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떠보니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 근무하던 백무하 동기였다. 육사에서 기초군사훈련을 같이 받았던 백 동기는 눈을 뜬 필자를 보고는 “희철아, 걱정하지마라! 너희들은 학교로 출근하다가 당한 교통사고라 공상처리가 가능하다. 내가 육본에 돌아가면 다시 확인해서 잘 처리하도록 할게...”하며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의 위로는 이미 군생활은 못하고 전역해야 하지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듣던 필자는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또 잠이 들며 의식을 잃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의식이 점차 회복되었는데 옆을 돌아보니 김종완 동기도 붕대를 감고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필자의 상태는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엉덩이와 다친 다리가 프레임 끈에 연결되어 침대 바닥에서 하늘로 둥둥 떠있었다.

 

그때 “희철아, 이제 정신이 좀 드냐?”라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재준 동기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그는 안전벨트를 철저하게 메고 있어 늑골에만 이상이 있었고 당시에는 비교적 많이 회복되어 걸어다닐 수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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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교통사고시 응급환자로 실려가 긴급 수술을 받았던 대구가야기독병원과 중환자실에 배치됐던 헌병 [사진=가야기독병원/국방부] 

 

사고현장을 달려가던 동기들은 유난히도 안개가 심해 운전도 힘들었고 추가 교통사고 위험도 감수했다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 교육종료 1주일을 앞두고 발생한 교통사고로 세명의 동기들은 마지막 종합시험도 치루지 못했다. 헌데 30년이 지난 최근에 육사 동기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당시에 많은 동기생들이 피해를 입은 세명의 동기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4년 4월25일 아침에 진해 육군대학 독신자 숙소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월요일 새벽, 마지막주 교육을 앞두고 숙소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김태경 동기는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방에서 나와 복도에 있던 전화 수화기를 들었는데 교통사고 소식이 최초로 육군대학에 전달되던 순간이었다.

 

김 동기는 각방의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었고 마침 잠에 취해있던 김현수 동기를 깨워 소식을 전하며 학교본부에 보고를 한 뒤에 차를 몰고 대구 가야기독병원으로 향했다. 김태경 동기의 전언에 따르면 그날 아침에 유난히도 안개가 심해 운전도 몹시 힘들었고 추가 교통사고 위험도 있었다고 했다.

 

두명의 동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하여 대구 가야기독병원에 도착하자 피해자 세사람 모두는 중환자실 및 수술실에 있었고, 필자는 횡경막 및 비장 파열에 따른 심한 출혈로 생명이 경각에 달려 긴급 수술중이었다. 

 

헌데 조사하던 경찰의 태도가 이상해 사고경위를 자세하게 따져 물었는데, 마침 가해자가 경찰출신으로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자 김현수 동기는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의 행정관이었던 이문석 동기에게 편파적이 아니라 정확하게 조치하도록 경찰에 통보하는 도움을 청했다.

 

때마춰 지금은 해체된 11군단 헌병대에서 근무하던 승장래 동기는 헌병을 급하게 대구 가야기독병원으로 파견하여 사고 조사를 하면서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던 중환자실 앞에 무장을 한 헌병까지 배치했다.

 

일단 안전하게 운전하여 정상적으로 대대장반 교육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의 경각까지 갔던 잔인한 4월의 아픔은 불행중 다행으로 많은 동기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하나 둘씩 회복되며, 뜨거운 동기애를 느끼게 한 소중하고 감사한 추억을 만드는 축복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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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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