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위기관리] 초라해진 ‘'말라이 무띤(다국적군의 왕)’ 상록수부대의 흔적(중)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3.03.17 09:00 ㅣ 수정 : 2023.03.17 09:15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5명의 추모비 및 추모 공원을 사고 현장인 에카트 강가에 조성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image
2022년 7월에 완성돼, 그해 8월4일 낮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과 오에쿠시 주지사 등 정부 관계자, 순직 장병 유가족과 당시 상록수 부대장·부대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공원 준공식에서 당시 김정호(육사36기) 동티모르 대사가 추모비에 경례하는 모습. [사진=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은 국가보훈처의 예산을 받아 오에쿠시 시내 시민공원에 세워진 기존 추모비를 재정비한 데 이어, 사고 현장인 에카트 강가에 추모비와 추모공원을 새롭게 마련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오에쿠시주 시내에서 비포장 도로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추모비 건립은 전임 이친범(육사 40기) 주동티모르 대사의 추진으로 이뤄졌다. 이 전 대사는 2020년 11월 추모비 제막식에서 "추모탑 제막을 통해 순직한 장병들을 국가가 잊지 않음을 보여줬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부 정책을 실현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호(육사36기) 동티모르 대사가 부임하면서, 사고 현장 추모탑 주변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모래사장과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던 추모비 주변은 1년여 뒤, 추모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순직 장병들의 이름과 얼굴, 상록수부대 활동 역사 등을 대리석 판에 새겨, 공원 담벼락에 넣었다. 

 

image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시내에 있는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탑 앞에서 고 김정중 병장의 모친 장홍여 여사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사진=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

 

오에쿠시 주지사, 순직 장병 유가족과 당시 상록수 부대원 등이 참석해 추모공원 준공식 거행

 

오에쿠시 주지사는 "추모공원 인근에 아직 찾지 못한 김정중 병장의 이름을 딴 도로를 만들어, 이곳을 지나는 누구나 한국군을 기리고,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추모공원은 2022년 7월에 완성돼, 그해 8월4일 낮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과 오에쿠시 주지사 등 정부 관계자, 순직 장병 유가족과 당시 상록수 부대장·부대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됐다. 

 

준공식에는 현지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추모공원을 가득 채웠다. 사전에 알려진 행사도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김영덕 제522평화유지단 상록수부대 7진 단장(예비역 대령)은 "동티모르, 특히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 함께 어려움과 즐거움을 같이했던 진정한 친구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서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해주실 때,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며 감회에 젖었다.

 

이어 그는 "고인들이 남기신 뜻이 이곳에 깊이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image
동티모르 오에쿠시주(州) 에카트 강 인근에 세워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공원 준공식에서 현지 주민들이 헌화 묵념하는 모습. [사진=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

 

이날 행사에서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한 고 박진규 중령의 부인 정혜인 씨는 "거의 20년이 지나 처음으로 오에쿠시를 방문했다. 마을 주민들이 지금껏 상록수부대를 기억해주고 고인을 추모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같이 먼 곳으로 떠난 5명의 영웅이 오에쿠시 주민들 덕분에 편안히 잠든 것 같아서, 유족들도 평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르세이노 바노 오에쿠시 특별행정주지사는 "(추모비가 조성된 곳은) 여러분의 집과 같은 곳이자, 동티모르와 오에쿠시,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고 상징하는 장소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주지사는 "19년간 사랑하는 가족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도 잘 알고 있다. 저희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의 추억을 항상 품으며, 순직 장병 5명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mage
2022년 8월 4일 동티모르 오에쿠시주 에카트 강 인근에 세워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공원 준공식 모습. [사진=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

 

동티모르 정부,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현장에서 순직한 장병 5명에게 훈장을 수여

 

국방부의 당시 사고 조사 기록 등에 따르면 2003년 3월6일 오후 4시쯤, 순직 상록수부대원 5명은 동티모르 오에쿠시 본부에서 60∼80㎞ 떨어진 동·서티모르 국경지대인 빠사베(Passabe)에 배치된 파견대로부터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이를 교체해주러 현장으로 향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 탓에 발전기가 고장 날 경우 냉장고와 전화기가 작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전기 배터리 충전조차 할 수 없어 평화유지군 본연의 업무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들은 폭우 등 기상 악화로 인해 헬기로 운반이 어렵자, 예비 발전기를 차에 싣고 육로를 선택해 이동했다.

 

지프 2대에 나눠 탄 5명은 에카트 강을 건너던 중, 선행 차량 1대가 강 3분의 2지점에서 원인 모를 고장으로 멈춰 섰다. 5명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체인 연결 작업을 하는 사이, 상류에 집중된 호우로 강물이 불어나 박진규(당시 35세·육사 46기) 중령, 김정중(당시 22세·운전병) 병장, 최희(당시 22세·통역병) 병장 3명이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통나무를 붙잡으며 급류에 휩쓸린 전우들을 구하러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지원대장 민병조(당시 38세·육사 43기) 중령과 백종훈(당시 23세·운전병) 병장마저도 포함된 5명 모두 희생됐다. 

 

이때 오에쿠시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 가운데 4명의 시신이 강 하류 일대에서 차례로 수습됐다. 

 

2003년 3월 말 작성된 UN 평화유지군(PKF·Peace Keeping Force) 사령관 문서에는 “사고 당시 지역 주민 수천 명이 강가로 나와, 밤낮으로 실종자 수색에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상록수부대와 오에쿠시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보여준다.

 

상록수부대 7진 대원으로 동티모르에 파병된 최영길 예비역 원사는 "보수나 대가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온 주민들이 다 같이 수색 작업에 참여해, 수십㎞를 떠내려간 실종자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면서 "사고 직후 수천 명의 주민들이 현장에서 촛불을 띄우고 꽃을 뿌리며 기도하고,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동티모르 정부는 그해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19년 전 동티모르에서 순직한 장병 5명을 추모하며 호세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이 순직한 장병 5명을 대신하여 유가족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