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스텝으로 속도조절···내 대출금리도 진정될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한국은행이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 필요성은 잔존해 있지만, 최근의 경기 침체와 자금 시장 경색 우려 등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조절이 이뤄졌지만 은행권 대출금리 상승 압박은 여전하다. 은행들의 수신금리 인상 경쟁과 은행채 발행 감소가 대출금리 오름세를 부추길 것이란 관측이다. 변동금리 차주들의 이자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 기준금리 인상폭 0.50%p→0.25%p 속도조절···경기침체 우려 고려한 듯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00%에서 연 3.25%로 0.25%p 인상했다. 이번이 올해 마지막 금통위인 만큼 연말 기준금리도 연 3.25%로 확정됐다.
한은은 올해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올 1월 기준금리를 연 1.00%에서 연 1.25%로 올린 데 2월(동결)을 빼고 4·5·7·8·10월 모두 인상했다. 특히 지난 7월과 10월에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섰다.
당초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 인플레이션 압박 등에 따라 이달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금통위 일정이 다가오면서 속도조절론에 무게가 기울었다. 최근 원/달러 환율 진정세와 금리 급등에 따른 경기 침체, 자금 시장 경색 등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속도도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베이비스텝을 시사한 바 있다.
■ 빅스텝보다 충격 덜하겠지만···은행권 대출금리 상승 압박 여전
한은의 이번 베이비스텝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고, 인상폭도 전월(빅스텝)보다 축소된 만큼 시장의 큰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시장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오른 만큼 은행권 대출금리 상승은 불가피하다.
올해 누적된 기준금리 인상 영향에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7%대를 돌파한 상황이다. 신용대출 금리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특히 주담대의 경우 올 연말 연 8~9%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외에도 은행들의 수신금리 인상 경쟁이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길 것이란 관측이다. 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연동해 예·적금 금리를 올리면 그만큼 조달비용도 늘어난다. 이 조달비용은 은행권 주담대 변동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 6월 2.38%에서 8월 2.96%로 오르더니 10월 3.98%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은 은행들의 공격적으로 수신금리를 올린 시점과 맞물린다. 은행들은 매달 발표되는 코픽스를 변동형 주담대 상품에 반영한다.
결국 ‘기준금리 인상→수신금리 상승→코픽스 상승→주담대 금리 상승’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레고랜드발(發) 금융시장 악화로 정부가 은행채 발행 자제를 주문한 점도 은행들의 조달 부담을 높이고 있다. 자금 조달 수단인 은행채를 발행하지 못 하면 더 높은 수신금리를 제공해 수신고 확대에 나서야 한다.
■ 내년에도 긴축 기조 이어갈 듯···내 대출 이자 얼마나 늘어나나
시장에선 한은이 적어도 내년 초까지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이란 얘기다. 증권가 등의 전망을 종합하면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 수준은 연 3.75%다. 지금보다 적어도 0.50%p는 더 오른다는 관측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의 기준금리를 추격해야 하겠지만, 금융시장 곳곳에서 악재가 터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예측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아무리 속도조절이라고 해도 동결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시장의 전망(내년 상반기 연 3.75%)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은 기준금리 인상, 대출금리 상승에 직접 노출돼 있다. 특히 한은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변동금리 비중은 78.5%에 달한다. 변동금리는 금리 상승기 가장 취약한 구조다.
일례로 주담대 5억원을 30년 만기 원리금균등상환으로 갚을 경우 연 4% 이자에서는 매달 약 238만원을 내지만, 금리가 6%로 오르면 매달 상환액은 거의 300만원으로 늘어난다. 시장에서 내다보는 연 8%에 도달할 경우 약 366만원으로 불어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간 이자 부담은 올해 9월부터 내년 연말까지 최소 17조4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취약차주의 경우 같은 기간 이자 부담은 가구당 약 330만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