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국제법센터 소장 “사춘기 지난 한·일 관계, 윤석열 정부서 회복해야”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한일 관계는 지금 질풍노도를 겪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일 양국간 관계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은 1일 한국생산성본부(KPC)가 개최한 ‘2022 CEO 북클럽’ 강연자로 참석해 ‘복합대전환기-한일관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신 소장은 36년간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3년 은퇴 후 대학강의, 외부강연, 언론기고, NGO(비영리민간단체), 공익단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세계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또 한일관계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세토(SETO) 포럼’ 이사장도 맡고 있다.
이날 강연은 한미, 한중 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외교 관계가 중심을 이뤘다. 신 소장은 현재 한일 관계가 어떤 상황이며 어떤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복합대전환기’, 한일 관계와 어떤 연관이 있나
신 소장은 복합대전환기가 2010년 중반부터 시작됐지만 여러 전환이 겹친 2020년대야말로 진정한 복합대전환기라고 강조했다.
2020년대는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제조업과 IT(정보기술)가 결합하면서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종전에는 10년 가량 걸리던 것들이 이제는 절반인 4~5년으로 단축될 만큼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경제·군사적 함의, 저출산·고령화, 기후위기·에너지변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파장 등이 복합대전환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미중전략 대결 가속화와 북한 핵무장, 자유주의 국제질서 부진 등 대외정치적 변환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여러 변화들이 종합적으로 진행되는 복합대전환기 특징을 신 소장은 △초불확실성의 세계 △초연결성의 사회 △고속변화와 불안정의 시대 △복합위기 빈발의 환경 등 4가지로 정의했다.
신 소장은 “‘확실한 건 불확실성 뿐’이라는 말이 있다. 불학실한 가운에 얼마나 탄력성을 가지고 대처하느냐가 변수가 될 것”이라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역·분야·영역간 연결이 깊어 융합적 대처가 필요하며 고속변화와 불안정 시대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빨라져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복합대전환기에 대한 언급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신 소장은 “우리는 현재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한일 관계는 20세기 사고에 머물러 있다"며 "급변하는 세상에 한일 관계는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가를 짚어보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복합대전환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동맹과 우호국가"라며 "일각에서는 '각자도생'이라고 하지만 사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국가 간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국익과 가치를 실현하는 시대”라며 “그런 차원에서 현재 한일 관계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신뢰가 무너진 한일 관계, 악순환 고리 끊어야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한일 관계를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로 가는 계기가 됐다. 한일수교 이후 ‘문세광, 육영수 여사 암살’,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등 더 큰 위기도 있었다. 심지어 단교 얘기까지 오갈 만큼 심각한 상황도 직면했지만 그때도 한일 관계는 1년 내지 길어야 2년 이내로 단기간에 수습됐다.
하지만 지금은 복합적인 요인들과 함께 악순환의 형태를 띠며 한일 관계 악화가 고질병이 돼버렸다.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서로 간 신뢰가 사라졌다. 국가 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있어야 예측 가능성이 있고, 이에 근거해 미래를 보고 움직일 수 있는데 현재 한일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신 소장의 설명이다.
한일 관계에는 크게 4가지 단층이 존재한다. 과거사 현안, 영토문제, 지정학문제, 국민감정 등이다.
신 소장은 “과거사는 수십년째 한일 관계를 짓누르고 있다. 당장 가장 큰 현안으로는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인식 문제 등이 한일 관계를 굉자히 어렵게 하고 있다”며 “또 독도 문제도 영향이 크다. 이 문제는 일본이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 문제다.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독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라는 지정학적 문제가 있다”며 “2013년 초반부터 한국의 중국경사론이 나오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결국 중국 궤도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고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감정도 굉장히 나빠진 상황이다. 2012년만 하더라도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63%에 달했는데 지금은 30% 초반대까지 떨어졌다”며 “빠른 시간 내에 40%까지는 끌어올려 거기에서 추동력을 얻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수년에 걸쳐 나빠진 한일 관계를 단번에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조금씩, 꾸준히 악순환의 구조를 선순환의 구조로 바꾸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 사춘기에 놓인 한일, 관계 회복 장기화돼선 안 돼
신 소장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양국 모두 피해를 보겠지만 사실 한국 피해가 더 크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마치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일본은 한국을 거의 무시하고 있으며 별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핵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 협조 없이 미국을 설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일본 역시 한국이 있어 북한이나 중국 위협에 대응하는 데 어깨가 가벼워지는 등 전략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신 소장은 "한일 양국이 뜻을 모으면 동북아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전략 파트너, 북핵 폐기 및 한반도 통일 등에서 시너지를 충분히 낼 수 있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을 반드시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좋게 지내지만 무턱대고 어울리지 않음)의 자세 △구동화이(求同化異·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되 이견이 있는 부분까지 공감대를 확대)의 접근 △역지사지(易地思之·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기)의 지혜 △원망무실(遠望務實·미래를 내다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실용적으로 접근)의 행동 △송무백열(松茂柏悅·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친구가 잘되는 일을 기뻐한다)의 관계 등 5가지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신 소장은 “한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현안은 해결하되 과거사에 대해 중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새 정부 초기에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진전된 관계에 후퇴는 없어야 하며 양국이 서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비난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한일 관계는 일종의 사춘기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사춘기를 지나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더 악화되느냐의 기로에 놓여있다”며 “윤석열 정부 내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한국은 물론 일본도 정신 차리고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