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의 모순에 울고싶은 면세점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면세점은 제품에 붙는 세금이 면제가 되기 때문에 시중 가격보다는 늘 싸게 마련이다. 해외출국자의 경우 면세점에서 평소 갖고 싶었던 제품을 사는 것도 시중가격과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일부 제품에서 면세점 가격이 시중과 별 차이가 없어지거나 오히려 더 비싸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4일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가장 인기있는 담배의 경우 대부분 3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30달러는 연초 면세가격을 정할 때만 해도 한화로 환산하면 3만3000원 정도했지만 지금은 4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원화로 표시되는 국내선과 달리, 국제선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환율이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제주공항 국내선 면세점에서 에쎄담배는 3만2000원에 팔린다. 국내선 면세점의 경우 원화에 맞춰 미국 달러로 가격이 표시된다. 원화가 고정이고, 달러화가 유동적이다.
반면 국제선은 달러가 고정이고, 원화가 유동적이어서 달러환율이 내려가면 구매자는 이득을 보지만 거꾸로 달러환율이 올라가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면세 효과가 반감되는 것이다.
똑같은 담배를 사더라도 제주공항 국내선 면세점에서는 3만2000원에 살 수 있는 것이 인천공항 국제선 면세점에서는 4만원 가까이 되니 면세점 간 가격차이가 8000원에 달한다.
일부 담배는 오히려 시중보다 더 비싸지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I사의 전자담배 제품은 시중에서 한 보루에 4만5000원에 팔리고 있는데 인천공항 국제선 면세점에서는 34달러에 팔리고 있어 이를 원화(24일 기준 1342원)으로 환산하면 4만5600원이 약간 넘는다. 환율 때문에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면세점에서 사는 가격이 더 비싸지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일부 향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환율이 연초 대비 20% 이상 오르면서 면세가격이 시중가격과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해외여행이 조금씩 풀리면서 2년여에 걸쳐 개점휴업 상태의 시련을 겪었던 면세점들이 이제 좀 기지개를 켜나 했더니 환율이 도와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 달러 환율에 맞춰 원화 가격이 너무 올라가다 보니 구매자들이 면세점 이용을 기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면세점은 고심 끝에 특별 할인 서비스나 환율보상 서비스를 추가로 실시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구매 당시 환율이 1300원을 넘으면 소비자가 손해 본 만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최대 60% 더 돌려주는 환율 대응 보상 정책을 내놨다.
면세점들 입장에서는 해외여행 확대로 지난 2년여간 눈덩이처럼 커진 적자를 줄일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지만 환율 역효과로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을 보면 신라면세점을 제외하고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면세점은 1분기 매출 1조2464억원에 영업적자 753억원을 냈고, 신세계면세점 역시 매출 8251억원에 영업적자 21억원을 기록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인천공항 이용자 수가 작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은 맞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30% 회복에 그치고 있다”면서 “달러 강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그나마 늘어난 여행자들의 면세점 이용율이 급격히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도 면세점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항공사는 24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국제공항 면세점 대표와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과 호텔 롯데와 신라 등 7개 면세점 대표가 모두 참석했는데 면세점 대표들은 면세업계의 애로사항을 적극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면세점 업계의 경영부진을 덜어주기 위해 1인당 면세한도를 기존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고 추석전에 이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면세점업계 입장에서는 해외여행객도 늘어나고 정부의 지원 등에 힘입어 코로나19 악몽에서 서서히 벗어나려고 하는 시점에서 환율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