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한국은행이 13일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대외 불확실성으로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국내 기준금리는 7년 9개월 만에 연 2%대로 올라섰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권 여·수신 금리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빅스텝을 반영하더라도 당장 급격한 인상까진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금리 인상기 은행 실적도 성장한다는 공식이 일반적이지만, 하반기 환경은 녹록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 ‘물가와의 전쟁’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2.25%로 껑충
한은 금통위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0%p 인상했다. 지난 4·5월에 이어 3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다.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한 건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인상에 따라 국내 기준금리는 지난 2014년 10월(연 2.00%) 이후 7년 9개월 만에 2%대로 진입했다.
한은이 통상적 인상폭인 0.25%p(베이비스텝) 대신 빅스텝을 택한 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 목적이 가장 크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걷어들이면서 물가 안정을 유도하겠다는 게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배경이다.
물가 상승세가 갈수록 가팔라지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폭(빅스텝)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 기준금리 인상에 은행 여·수신 금리도 상승···대출금리 더 오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권은 여·수신 금리에 인상분을 반영한다. ‘은행들의 은행’인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만큼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금리)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생 상단은 연 6%대까지 올라섰다. 그간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채 등 준거금리가 뛰면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번 기준금리 빅스텝에 따라 대출금리는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현재 대출금리에는 기준금리 인상 시그널이 선(先)반영된 경향이 있어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경우 최근 은행권이 금리 인하 조치를 취하며 진정되는 모양새였지만,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상승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연말 예상되는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7~8%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처럼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는 은행채나 금융채 등의 금리가 미리 올라 대출금리도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인상 발표가 난다고 해도 충격을 줄만한 (대출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신금리에도 이번 기준금리 인상분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자 폭리’ 비판을 의식한 주요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 때마다 예·적금 금리 인상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수신금리 인상폭은 은행이 정한다. 기준금리 인상분에 정비례해 올릴지, 시차를 두고 반영할지도 은행 판단에 달렸다.
그간 기준금리가 0.25%p 인상될 때 시중은행들은 수신금리를 보통 0.3~0.4%p 올려왔다. 단순 계산으로 봤을 때 빅스텝을 반영하면 0.6~0.8%p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지난 8일 이번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선제 조치로 수신금리를 최대 0.7%p 올린 바 있다.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을 바탕으로 인상폭을 설정했다고 신한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하나은행도 이날 기준금리 빅스텝 직후 예·적금 상품 금리를 최대 0.9%p 인상했다. 상품별 가입기간에 따라 적립식 예금 금리는 0.25%p~0.8%p, 거치식 예금 금리는 0.5%p~0.9%p 각각 인상된다.
■ 금리 인상=실적 개선?···“하반기 환경 녹록치 않다”
시장에선 한은이 다음 달에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말 도달 기준금리 전망치는 연 2.75~3.00% 수준이다. 현재보다 최소 0.50%p 이상은 더 오를 것이란 얘기다.
금리 인상기에는 대출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은행권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란 공식이 일반적이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등 4대 금융지주의 올 1분기(1~3월) 순이익 합계는 4조5951억원이다. 이자 이익 증가에 따른 은행 수익 성장세가 금융지주 호실적을 견인했다. 2분기(4~6월) 역시 이 같은 수준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반기까지 호실적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수신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지출 증가와 대출금리 상승폭 제동, 대손충당금 적립 등이 변수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증권가 등에서도 하반기부터 은행권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수신금리를 인상하는 만큼 대출금리를 올리기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또 금리 인상기와 경기 둔화가 맞물리면서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는 점도 악재다. 차주들의 상환 능력 약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은행들 입장에선 손실 흡수 능력 확대 차원에서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려야 한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금융당국의 충당금 추가 적립 요구와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차이) 억제 조치가 지속 병행될 경우 은행권의 수익성 확보에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