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한국 조선업계 양대 산맥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불허가 확정되자 업계 관계자들 뿐 아니라 많은 투자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자국 업체의 인수합병에 늑장을 부린 점은 아직도 의문부호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 같은 경우는 한국 조선사의 신조선 가격협상 능력 향상과 세계 선박업계 영향력 강화 등을 견제하기 위해 두 업체의 인수합병을 불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정위는 왜 한국 조선사들의 재무 건전성 강화와 효율성 향상 등을 가로막았는 지에 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산업은행(대우조선해양 주 채권자)이 전면에 나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했지만 두 기업의 결합이 무산됐다는 것은 공정위만의 차별화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이 글로벌 조선업계 중 1위 기업 현대중공업이 4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선, 해양플랜트, 군함 등 다양한 시장을 상정해 경쟁제한성을 검토했다.
이 가운데 중점적으로 검토된 분야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과 추진엔진 시장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결합된다면 글로벌 LNG운반선 시장에서 시장점유율(M/S)은 약 61.1%에 이른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CGT(부가가치를 고려한 단위 값) 기준 현대중공업이 40.1%, 대우조선해양이 21%의 수주물량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총체적인 시장 지배력을 파악했으며 두 회사가 보유한 우수한 기술력, 공급능력지수 등도 면밀히 검토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M/S가 과반을 넘었다는 점을 알았지만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U 경쟁당국이 이미 기업결합 심사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후 이기 때문에 별도 입장을 언급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공정위는 엔진·기자재 업계가 과도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엔진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어 선박 엔진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그룹으로 편입되면 대부분 엔진이 현대중공업그룹 엔진으로 대체돼 국내 엔진 제조업체 판매처가 완전히 봉쇄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공정위는 특정 업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언급된 국내 엔진 제조업체가 HSD엔진을 뜻한다고 보고 있다.
HSD엔진은 대우조선해양과 거래해 2019년 총 매출 6050억 원 가운데 1631억 원을 확보했으며 2020년에는 6010억 원 가운데 1514억 원을 거머쥐었다. 결국 해마다 발생하는 총 매출 가운데 25%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조선 기자재 분야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기자재 제품을 구입하는 비율이 각각 52.1%, 19.7%다. 두 기업이 결합돼 기자재업계 물량 가운데 71.8%를 구입한다면 기자재 업체들의 가격협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정위 관계자는 “EU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거부로 사실상 기업결합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모회사)이 기업결합 신고 철회서를 제출해 계약 종결을 확인하는 대로 절차에 따라 심사를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을 정상화하기 위해 ‘민간 주인찾기’가 핵심 사항”이라며 “외부전문기관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조속한 시일 내 대우조선해양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EU 당국 결정은 비합리적”이라며 유감을 표한 뒤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하고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를 하는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공정위가 사실상 EU 당국 결정에 따라 입장을 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측은 EU 당국과의 꾸준한 접촉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