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하는 은행 ‘점포 폐쇄’···“대안이 우체국 위탁? 실효성 없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시중은행이 디지털 전환(DT)과 효율성을 이유로 ‘점포 줄이기’에 나선 가운데 금융 소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은 공동점포 운영과 같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단 입장이지만 과열 경쟁·전략 노출 등의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당국 역시 우체국 업무 위탁 등을 추진하겠단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일각에선 실효성 없는 대안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올 1월 최소 72개 점포 영업을 중단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262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앞으로 은행 점포 폐쇄는 가속할 전망이다. 비대면(언택트) 문화 확산과 디지털 전환 등의 영향으로 은행들이 모바일 뱅킹에 힘을 싣고 있는 데다, 비용·인력 효율화 측면에서도 점포 폐쇄는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AI(인공지능) 뱅커가 나오는 등 은행권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창구도 중요한 업무인 게 사실이지만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은행들의 전략적 슬림화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점포 감소 흐름 속에서 부작용으로 대두되는 건 금융 소외다. 예금 입·출금과 이체 등의 업무를 창구에 의존했던 소비자들이 금융 소외에 직접 노출될 수 있다. 아직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금융 접근 통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상대적으로 고령화율이 높은 농촌 등에서 점포 폐쇄가 이어질 경우 지역 불균형 심화도 우려된다. 그나마 남아있는 점포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빨라진 디지털 금융 전환에 적응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며 “(은행은) 금융 접근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만큼 소비자에 대한 배려를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점포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금융 소외 문제를 최소화하겠단 방침이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테스크포스(TF)가 꾸려져 2개 이상 은행이 한 곳에서 영업하는 공동점포 운영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점포에서 2개 이상의 은행이 영업할 경우 경쟁이 과열될 수 있고, 영업 전략도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간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간다는 후문이다.
금융당국도 급속한 은행 점포 폐쇄에 따른 부작용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은행 자율성을 인정한다면서도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 보호 등의 방안 마련을 유도하겠단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 계획에서 △현금인출기(ATM)·점포 금융대동여지도(금융맵) 고도화 △우체국 업무 위탁 확대 △편의점·백화점 캐시백(인출)·잔돈 입금 서비스 활성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점포를 줄이는 대신 곳곳에 위치한 기관·시설과 은행 업무를 연계하겠단 뜻이다. 하지만 편의점의 경우 업무 범위가 좁은 데다 안정성이 떨어지고 민원 처리가 불가능하단 한계가 있다.
특히 우체국 업무 위탁에 대해서는 실효성 지적이 잇따른다. 시중은행과 우체국은 성격에 차이가 있는 만큼 업무 위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체국이 은행들 점포 줄이기에 동원돼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배진교 의원실 관계자는 “(고객은) 동네에 있는 은행이 줄어서 불편하다고 하는 건데 우체국에 업무 위탁을 한다는 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일단 점포를 무분별하게 못 줄이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체국이 은행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건 맞지만, 우체국 역시 점포가 사라져 가고 있다”며 “우체국 활성화 차원의 개편이라면 일리가 있어도 은행 점포 폐쇄 대안으로 똑같이 쇠락하는 쪽에 합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우체국 형태로 금융 민원·자문 서비스를 처리하기엔 전문성과 인력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은행이 (최소) 거점별로 지점을 운영하도록 하고 ‘금융 포용성’을 경영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은행 점포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조속한 공동점포 운영 협의와 적절한 교육 및 거래 수단 제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구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금융 취약계층이 금융으로부터 소외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동점포 운영과 같은 하드웨어 대책과 교육·사용자 인터페이스(UI) 구축 같은 소프트웨어 개선을 망라한 지원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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