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1.18 10:02 ㅣ 수정 : 2022.01.18 10:02
위트컴 장군, 군법 어기면서 군수창고 개방해 천막과 구호물자 꺼내어 이재민들 도와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5일 밤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 수색작업에 투입된 소방관 이형석(50) 소방위, 박수동(31) 소방교, 조우찬(25) 소방사 등이 순직했다.
고인들의 유해는 이날 합동영결식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영결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영결식에서 뒷줄에 앉아 순직 소방관 동료들의 조사를 경청하고, 유족들의 헌화와 분향을 지켜본 뒤 가장 마지막으로 헌화·분향을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유가족 한 명 한 명에게 국민을 대표해 조의를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운구 차량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고인들을 배웅했다.
이어 이흥교 소방청장에게 재발방지대책 마련과 소방대응체계 정비를 지시했고, 오병권 경기도지사 권한대행에게는 공사 현장의 위험물질 관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조사 한마디 하지 않으신 그 2시간 동안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으나 내려쓰지도 않은 마스크를 자꾸 밀어 올리며 눈물을 찍어내던 모습을 나는 조용히 보았다"며 "영구차가 떠나기 전 20여 분 동안 순직 소방관들의 동료들과 함께 겨울 바람 맞으며 서 계신 대통령의 모습이, 나는 추웠다"고도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이 전해진 6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순직하신 세 분의 소식에 가슴이 멘다"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의 ‘부산역전 대화재’는 절망의 늪에 빠뜨린 대참사
약 70년 전이며 휴전협정 체결로 6·25남침전쟁이 끝난 그해인 1953년 11월27일 부산역이 있던 중구일대에서도 대형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휴전을 맞아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서울로 정부가 옮겨 가긴 했지만, 여전히 부산 일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전쟁 피난민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화재 사건의 시발점이 된 중구 영주동 일대에는 피난민들이 만든 임시 천막으로 가득 차 있었고, 늦가을 건조한 날씨에 불이 딱 붙기 좋은 목조 건물이 밀집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판자촌에서 일어난 작은 화재였는데 갑자기 불어온 강풍으로 지역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며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 당시 부산의 도심이었던 부산역~ 중앙동~ 동광동-영주동~대청동입구 일대가 거의 전소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불길은 이튿날 새벽 6시경 잡혔으나, 29명의 사상자와 6천여 세대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주택 3,132채 및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던 옛 경부선 부산역사와 부산우체국이 전소돼 버렸다.
그 화재는 ‘부산역전 대화재’로 기록되었고 전쟁의 악몽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설상가상 부산 피난민들을 다시금 절망의 늪에 빠뜨린 대참사였다.
대참사 이후 부산역은 1965년까지 10년 이상 가건물을 사용했으며, 부산역 신축을 위해 1965년 7월 23일 초량역의 영업을 정지하고 부산진역으로 통합하여 운영했다.
1969년 초량에 부산역이 신축 완공됨과 동시에 명실공히 부산의 종점 부산역으로서의 업무를 다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신축된 현 부산역은 초량역 위치가 아니고 3부두 옆의 물웅덩이 해변을 매립한 곳이다.
이 화재에 앞서 1953년 1월30일에도 국제시장 대화재가 발생하여 국제시장이 전소되고 부평동, 신창동, 광복동 일부가 피해를 입는 큰 참화가 있었다.
이 국제시장 대화재와 부산역전 대화재를 같은 화재로 착각하여 국제시장, 남포동, 광복동까지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된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1954년 12월 용두산공원 판자촌에도 화재가 발생하여 3명이 사망하고 192명이 부상 당하는 등 많은 판자촌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궁중 유물을 임시 보관했던 국악원 창고가 전소돼 상당수의 유물이 타 버렸다.
이러한 사유로 그 당시에 사람들이 "부산이 아니고 불산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우스게 소리로 얘기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부산역전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벽안의 미 2군수사령관 위트컴 장군은 군법을 어기면서 군수창고를 개방해 천막과 구호물자를 꺼내어 이재민들을 도왔던 역사적 사실이 감동을 주고 있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