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K-Sapience (35)] 한국의 개신교 보수화⑤ 미국의 근본주의

민병두 입력 : 2024.09.27 13:08 ㅣ 수정 : 2024.09.27 17:07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근본주의와 굳건한 교회동맹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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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복음 전도사' 빌리 그래함 목사. [로이터=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2024대선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개신교 근본주의 이들은 누구일까? 미국의 근본주의는 어떻게 해서 한국에 수입되었을까? 근본주의는 왜 정치에 개입할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 그리고 정치를 들여보아야 그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남북전쟁 (1861-1865)이전까지만 해도 큰 도전을 몰랐다. 자원은 풍부했고 국토는 넓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알래스카에서 루이지애나까지 국토가 확장되었다. 영국과 서유럽 보다 넓은 영토에서 종교의 낙원을 찾아 이민을 온 그들에게 미국은 하나님의 약속된 땅으로 , 미국인은 선택받은 국민처럼 생각되었다. 주님이 미국을 선택하고 여기에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명백한 운명’을 믿었다.

 

남북전쟁은 큰 시련이었다. 최초의 큰 아픔이었다. 신앙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다. 전쟁의 결과, 흑인노동자들이 북으로 대거 이주하고 실업과 슬럼가 등 도시화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났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펴냈다. 창조론을 믿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이는 중대한 도전이었다. 남북전쟁과 진화론은 미국인들이 갖고 있었던 낙관론을 흔들었고 시대적 상황은 비관론에 빠져들게 했다.계몽주의와 근대 과학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 성서비평학이 만들어지고 미국으로도 전달되었다. 성서를 있는 그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등을 반영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화론과 함께 성서비평학은 기존의 신앙을 뒤흔드는 도전이었다.

 

프린스턴대학을 중심으로 미국 개신교가 답을 찾았다. 성경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성경의 무오설(무오류설) 즉 복음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 말씀에 따르면 종말이 다가오고 있고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예수가 재림하며 선과 악의 아마겟돈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면 그때에 의인들은 들어올림(휴거)를 당하고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으로 이에 대비할 수 없으니, 사회변화로는 해결이 안되니 성령에 의탁하고 선교로 성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성서비평학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사회개량론을 비판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선교, 행동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엘리트들이 전세계로 나가 신앙을 전파했다. 

 

미국인은 70%기독교를 믿는데 그중 개신교는 50% 가톨릭은 20% 정도가 된다.(2021) 복음주의자들은 미국 전체 기독교인의 81%이다. 그 중 오론쪽에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중간에 광의의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나머지 20%는 자유주의 진보주의적인 에큐메니칼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미국 기독교는 1940년 49%였는데 2차 대전 이후에 급격히 늘어났다. 기독교가 냉전에서 사탄과 싸우는 도구화하면서 급증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1949년 로스앤젤레스 부흥회에서 세계적인 부흥사로 발돋움했다. 소련이 핵을 갖게 되면 뉴욕 시카코 다음에 LA가 공격목표가 될 것이라고 설교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것은 기도 덕분이라며, 하나님께서 생존이냐 멸망이냐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주었는데 소돔과 고모라 처럼 되지 않을려면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1957년 뉴욕에서 열린 그의 부흥회에는 97회 설교를 하는 동안 3백만명이 참여했다. 에덴동산에는 노동조합도, 노조지도자도 살지 않았다고 하여 자본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1966년부터 2년간은 베트남에서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이기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여 닉슨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1970년대에는 한국으로 왔다.

 

무늬만 기독교 신자였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빌리 그래함의 조언을 받아들여 “성경에 기반을 둔 기독교로 회귀해야 하고 자신이 이를 위해 미국인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1953년 1월20일 취임식에서 기도를 올린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고 백악관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근본주의는 복음주의 1세대의 분리주의에서 벗어나 1940년대에 서부에 독자적인 신학대학을 설립하는 등 제도권으로 진입했다. 1960년-1970년대에 미국은 가치관에서 여러 변화를 경험한다. 원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공립학교에서 흑백인종의 통합등 새로운 이슈가 터지면서 “하나님의 가치에 맞서 인간들이 멋대로 가치를 결정하는 세속적 인본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생겨났다. 이 복음주의자들은 행동에 나서 1979년까지 백인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사립학교를 5000여개 만들었고 홈스쿨링을 보급했다. 인종분리폐지는 사탄의 행위이고 소련의 개입이라고 선전했다

 

복음주의자들이 볼 때 미국은 온갖 형태의 세속인본주의에 공격을 받고 있었다. 공교육의 세속화, 환경운동, 포르노, 동성애, 페미니즘으로 미국은 타락하고 있다고 보았다. 1979년 6월 ‘도덕적 다수’라는 3세대 근본주의 그룹이 결성된다. 그들은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벌이고 우파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설득했으며, 우파후보와 당선인들이 근본주의의 뜻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또 창조박물관 등 온갖 관련문화를 만들었다. 

 

1980년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은 복음주의 신자는 아니었다. 반대편에 있는 지미 카터야 말로 신실한 복음주의자였다. 기독교우파에서 보면 카터는 자유주의자여서 지지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레이건을 설득해서 회심하게 했다. 전직 배우인 레이건은 ’도덕적 다수‘ 지도부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연출했고, 기독우파는 그들이 꿈꾸던 대선 후보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조지 H. 부시도 지지를 했는데 레이건과 부시는 당선이 되고나서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본 클린턴이 당선이 되어 성추문으로 백악관을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 온갖 세속적 인본주의로 미국을 타락시켰다며 분노했다.

 

마침내 그들이 원하던 최적의 후보 조지 W. 부시를 만났다. 9.11테러가 올 것을 알고 하나님이 예비한 후보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국민투표에서 지고 선거인단에서 승리한 것이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부시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외치며 국가의 일인 복지서비스를 교회와 기독교자선단체에 위임했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고, 그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기관에 유대인 동성애자의 채용을 거부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당하고만은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트럼프가 나타났다. 트럼프는 기독교우파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나님이 이교도를 통해서도 역사한 선례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죄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통해 뜻을 펴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역사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집권 4년 동안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등 약속한 것을 실천했다. 트럼프는 시련을 거쳐 다시 나타났다. 2014년 대선 와중에 그가 총격을 받았는데 살아났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근본주의자들은 굳게 믿었다. <빌 그래함 부터 트럼프 까지는 ‘The Christian Right, the Republican Party and Donald Trump’(존 뉴싱어)에서 ’노동자연대‘ 번역문에서 참조>

 

한국의 개신교는 태생부터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을 받았다. 한기총 부터는 미국의 ‘도덕적 다수’ 등 근본주의와 궤를 같이 했다. 동질화율이 가장 높다. 미국은 공산주의와 그리고 탈냉전 이후에는 테러리스트, 북한등 악의 축과 늘 대립했다. 악마와 사탄이 있어서 세계의 경찰 역할에 국가의 재정과 국민을 동원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와 북한을 80년 가까이 대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이 동질화율이 높 은 이유이고, 한국의 개신교보수파와 미국의 근본주의가 굳건한 교회동맹을 맺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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