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시장 윤곽…증권사, 선점 경쟁 재점화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온실가스 배출권 관련해 기준을 마련하는 등 탄소금융 사업 윤곽이 드러났다. 이에 증권사들은 한동안 느슨했던 탄소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업 강화 구체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탄소배출권 시장은 강화된 기준과 정책 등으로 더딘 성장을 보였다. 때문에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한 증권사들은 미래 먹거리로 삼았던 탄소배출권 사업 경쟁에서 속도를 조절해 왔다.
정부도 전 세계 기후 위기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 데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증권사들은 탄소산업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으로 보고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환경부의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에는 내년 2월 7일부터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교환이 가능해지도록 시행을 앞두고 있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배출권 할당 취소 기준을 할당량의 50%에서 15%로 조정했다. 경기 악화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경우 기업들이 별다른 배출 감소 노력을 하지 않고도 잉여 배출권을 판매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의 배출권 거래 규모는 유럽연합(EU) 배출권 시장의 30분의 1 수준이다. 환경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장참가자가 150여곳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배출권 거래 시장참가자는 지난 4월 기준 780여개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와 8개 시장조성자, 21개 증권사다.
증권사는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로 시장에 참여하지만 시행령에 중개회사 등록요건·준수사항 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중개행위는 없었다. 증권사가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 역할을 하게 되면 개인투자자도 증권사를 통해 배출권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게 된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환경부의 온실가스 배출권 관련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는 현재보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가격 변동성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업체들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면 권리를 팔아 돈을 벌고, 반대로 줄이지 못할 시 비용을 주고 사도록 한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특히 증권사를 통해 배출권을 쉽게 거래하도록 위탁거래를 도입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향후 탄소배출권 수요가 늘 것이란 전망이다. 새로운 수익 창출에 목마른 증권사들은 탄소금융 시장 선점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선진국 중심의 친환경 정책 강화 기조에도 부합한다.
현재까지 자발적 탄소배출권 부수업무를 신고한 증권사는 메리츠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IBK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SK증권 등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전일 재단법인 ‘굿네이버스 글로벌 임팩트’와 온실가스 감축사업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다양한 지역사회 기반 신규 사업을 개발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에서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월 증권사 중 처음 사업개발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획득했다.
IBK투자증권은 해운 탄소금융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자 지난달 해양 데이터 전문기업 맵시와 전략적 MOU를 맺었다. 양사는 해상 내비게이션 서비스 등으로 쌓아온 맵시의 해운사 네트워크에 IBK투자증권의 금융 노하우를 더해 국내 최초로 유럽 탄소배출권시장에서 ‘해운업 특화 탄소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아시아 증권사 최초로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의 기후테크펀드 운용기관으로 선정됐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부터 운용사업부 산하에 탄소금융부를 배치해, 장내 탄소배출권 시장조성자 및 단독 위탁매매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4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탄소배출권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만큼 탄소금융 시장은 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이화여자대학교와 함께 개최한 'Toward the era of Green Transition' 국제 콘퍼런스에서 국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금융사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후위기 대응 본격화로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금감원은 국내 금융권이 저탄소 전환 자금을 원활히 공급하도록 독려하고, 저탄소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권과 긴밀히 협력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