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은행원 횡령...내부통제 조이니 줄줄이 수면 위로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NH농협은행에서 대규모 횡령이 발생하면서 은행권 금융사고 단절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은행들이 내부통제 강화 차원에서 자체 감사 활성화 등에 돌입한 이후 영업 현장 곳곳에서 금융사고가 확인되고 있는 흐름이다. 은행권의 신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최근 서울 소재 영업점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지인 명의로 대출을 실행한 뒤 돈을 빼돌린 ‘부당 여신 행위’를 적발했다. 이 같은 행위는 지난 2020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4년 넘게 이어졌으며 추정되는 횡령액만 약 117억원에 달한다.
농협은행 측은 지난 3월 발생한 배임 사건 이후 여신 관련 사고 예방을 위해 상시감사를 강화하던 중 이 같은 부당 여신 거래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금융사고 단절 차원에서 내부통제를 강화했는데 또 다른 종류의 금융사고가 확인된 것이다.
우리은행에서 지난 6월 발생한 횡령도 비슷한 이와 경우다.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우리은행 영업점의 한 직원은 올해 초부터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180억원 상당의 고객 자금을 횡령했다. 빼돌린 돈은 가상자산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횡령 사고는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적발했다는 게 우리은행 입장이다. 본점 여신감리부 모니터링을 통해 해당 대출의 이상 징후가 포착됐고, 해당 직원 및 담당 팀장에 검증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022년 본점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태로 홍역을 치은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그동안 은행권에서는 크고 작은 횡령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은행 임직원의 횡령 적발액은 약 152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저축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 등 다른 금융업권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큰 규모다.
은행권은 연이은 금융사고로 고객 신뢰 하락이 야기됨에 따라 앞다퉈 내부통제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우리은행은 금융사고 재발 방지 대책 중 하나로 ‘불시 검사 확대’ 카드를 꺼냈다. 본점에서 영업 현장을 대상으로 예고 없이 자체 검사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각 은행의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에 따라 금융사고 적발 사례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동안 느슨한 내부통제 안에서 벌어지던 각종 부정행위가 줄줄이 걸려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은행권에선 사전 적발 뿐 아니라 예방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은행이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돌려서 감독당국보다 먼저 금융사고를 발견하고, 나아가 사고액에 대한 회수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면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면서 “아직 추가 사례가 나올 거라고 예단하기 어렵지만 감사 확대 등을 통해 금융사고가 사전부터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은행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은행권에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금융사고 예방을 주문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횡령과 배임 등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내년 1월 금융지주사·은행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책무구조도 제도는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걸 골자로 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국내 19개 은행장들과 가진 첫 간담회에서 “은행은 항상 신뢰의 정점에 있어야 함에도 최근 은행의 신뢰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며 “환골탈태한다는 심정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