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본 청년취업대란 (20)] 중국의 '전업자녀'는 '경제적 동반자' vs. 한국의 '캥거루족'은 '경제적 착취자'
박진영 기자 입력 : 2024.08.24 06:37 ㅣ 수정 : 2024.08.24 06:37
한국의 '캥거루족'은 2004년 출현한 신조어 VS. 중국의 '전업자녀'는 지난 해 출현 전업자녀=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부모에게 월급을 받는 '경제적 동반자' 관계 캥거루족=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용돈을 받아도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경제적 착취자' 관계 한국의 2030청년 77%가 캥거루족이라는 조사 결과 있지만 '전업자녀' 현상은 관찰되지 않아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전업자녀(全職兒女)’는 중국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지난해부터 언론에 보도됐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번듯한 회사에 취업하지 못하게 되자 아예 전업주부처럼 온갖 집안일과 돌봄 등과 같은 가사일에 전념한다. 대신에 월급을 부모로부터 받는다.
전업자녀 현상은 극심한 청년실업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빚어낸 풍속도로 분석된다.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하기 어렵거나 취업을 해도 박봉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아예 나이든 부모 대신 집안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와 '근로계약서'를 쓰기도 한다.
중국의 16~24세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4월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지난 해 6월에는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3300만명이 구직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600만명 정도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올해 중국의 대학졸업생은 1179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극심한 취업난이 불가피하다. 올해 전업자녀 현상은 중국 도처에서 만연할 수밖에 없다.
전업자녀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부모와 함께 거주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가사일을 직장인처럼 담당하면서 부모에게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30~40대 자녀들을 ‘밤보초니(Bamboccioni·큰 아기)’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18∼34세 청년 중 64.3%가 부모와 함께 산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업자녀와 유사한 신조어로 '캥거루족'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 청년'을 지칭한다. 취직을 하지 않거나, 취직을 했지만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 지난 2004년 처음으로 등장했고 이후 지속적인 현상으로 심화돼왔다는 평가이다. 특히 취업을 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기보다는 부모에게 붙어서 사려는 행태를 지칭한다.
요컨대 청년실업시대를 맞아 한국에서는 20여년전부터 '캥거루족'이 번성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지난 해부터 '전업자녀'라는 신종족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캥거루족은 전업자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부모에게 얹혀 살아도 '가사일'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업자녀라는 신조어가 출현하면서 한국의 캥거루족은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의존성을 주목받게 된다. 중국의 전업자녀는 부모집에서 부모 돈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식사','청소', '세탁', '돌봄' 등의 가사노동을 제공하면서 월급을 받는다. 부모 입장에서 전업자녀는 '경제적 동반자'가 된다.
반면에 캥거루족은 부모입장에서 '경제적 착취자'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부모 집에서 살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지만 용돈까지 받아 쓴다. 아니면 부모와 다른 집에 살아도 거주 비용과 생활비 등을 부모에게 타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돈과 노동력을 아무런 댓가 없이 착취하는 구조가 캥거루족인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2024년 7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9세 이하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7월 50.0%에서 지난 7월 49.2%로 1년 사이 0.8%포인트(P) 감소했다. 29세 이하 청년의 고용률도 하락세다. 지난달 29세 이하 청년의 고용률은 46.5%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월 고용률 47.0% 보다 0.5%P 감소한 것이다.
이처럼 심각하게 하락하는 청년 고용률과 경제활동 참가 비율은 한국에서 캥거루족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진학사 캐치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30세대 77%는 대학교 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유로는 ‘안정적인 수입의 부재’가 56% 비율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캥거루족의 43%는 부모님 명의의 집에서 함께 거주한다. 부모에게 월세나 용돈 등을 받는다는 응답도 41%에 달했다. 부모와 같이 살면서 용돈도 받는다는 응답은 7%였다.
캥거루족 생활을 하는 청년의 대부분이 취업에 성공하면 부모님 집을 떠나 경제적인 자립을 하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님께 경제 의존을 하고 있다고 답한 청년의 87%는 독립 계획이 있다고 밝혔고, 독립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독립을 원하는 시기는 ‘취업 후’가 53%로 가장 많았다.
한국의 캥거루족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은 '7월 고용동향'에서 29세 이하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7월 40만2000명에서 지난달 44만3000명으로 4만2000명(10.4%) 늘었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가 1년 사이 10%P 급증했다는 것은 그만큼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업자녀' 현상이 관찰됐다는 뉴스는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진 적도 없다. 아마도 경제적 착취자인 캥거루족이 경제적 동반자인 전업자녀보다 더 편한 삶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캥거루족이 굳이 전업자녀로 전환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