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요새 빵은 빵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더 많이 먹잖아요. 게다가 대형 프랜차이즈는 내수 시장이 아니라 해외에서 성장세입니다. 제과점업 상생협약은 시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제과점업 상생협약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무분별한 출점을 막기 위해 도입된 협약이 실효성 의문만 남긴 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주관하는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가 단순한 수치로 대기업을 제한하려는 기조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이다.
6일 오후 동반위와 대형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대한제과협회는 제과점업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식을 열었다. 이번 협약을 두고 올해 초부터 말이 많았다. 제과점업 상생협약은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 '상생' 협약이라더니 되레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지나친 규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향한 역차별'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를 두고 업계 내에서 여러 의견이 나뉘자 이를 의식한 듯한 동반위는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기존보다 부드러운 규제를 들고 왔다.
동반위에 따르면, 이번 협약은 전년도 말 점포 수의 5% 이내(기존 2% 이내)에서, 중소 빵집으로부터 400m(기존 500m)의 거리를 둔 채로 신규 출점할 수 있도록 완화됐다. 기존 적용 대상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였는데 이번엔 빽다방 빵연구소도 포함됐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출점 거리 제한'이라는 카드를 사용해 왔다. 2013년 동반위는 빕스와 애슐리, 새마을식당 등 프랜차이즈 중견기업 이상이 운영하는 외식업체의 신규 출점을 두고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규 출점 기준은 '역세권 반경 100m 이내'였다. 2018년엔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출점에 제한을 뒀다. 편의점 업계 내부에서는 '50∼100m 이내 신규 출점 제한' 규제가 실효성이 떨어져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과점 업계 종사자들도 '제과점업 상생협약'을 두고 혀를 내둘렀다. 정부 기조에 어떻게 반발하겠냐는 의미다.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업계 선두 주자인 SPC 파리바게뜨는 현재 오너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CJ푸드빌의 뚜레쥬르도 규제가 완화됐다고 하지만 새로 출점할 수 있는 점포 수는 겨우 20∼30여 개다.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여전히 거리 제한이 남아 있어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국내에서 빠른 출점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이들은 국내 시장에선 여러 규율에 사로잡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작 해외로 눈을 돌렸다. 파리바게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매장을 연 뒤 현재 미국과 프랑스, 싱가포르 등 11개국에 진출해 총 56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뚜레쥬르도 2021년 337개의 해외 매장에서 지난해 443개로 성장선을 그리고 있다.
대기업 베이커리 브랜드가 해외에서 상승 곡선을 그릴 동안 우리의 배를 채운 건 동네 빵집이 아닌 커피 프랜차이즈다. 카페를 사무실이자 독서실, 개인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카페에서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커피 프랜차이즈 입장에서도 베이커리 메뉴를 통해 커피보다 높은 객단가로 매출을 확보할 수 있으니 호재다. 또 SNS나 택배로 빵을 주문하거나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도 빵을 구매하는 등 소비 트렌드는 변했다.
즉 단순한 거리 수치로 제한을 두는 규제는 산업을 발전시킨다고 볼 수 없다. 본래 목적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는 협약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다. 결국 내수 시장을 두고 제과점업 프랜차이즈와 소상공인이 '제로섬 게임(승자의 독점과 패자의 실점을 합하면 영(0)이 되는 게임)'을 벌이는 꼴이다.
제과점업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정부가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조치가 반복된다면 결국 제로섬 게임의 함정에 빠져 내수 시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번 상생협약을 통해 서로의 사업영역을 존중하면서 대한민국의 제빵 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주길 부탁한다"는 동반성장위원장의 한 마디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