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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심호흡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사항에 담긴 ‘불공정성’과 ‘반혁신성’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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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입력 : 2024.08.02 11:16 ㅣ 수정 : 2024.08.0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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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집앞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전날 사측과의 막판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총수가 해결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전삼노는 삼성전자 최대 노조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전삼노의 요구사항은 사회적 불공정성과 경영학적 반혁신성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반도체 산업의 다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조율이 어려운 딜레마적 상황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절실하다.  

 

전삼노의 요구사항은 3가지이다. 성과급 제도 개선(EVA→영업이익), 전 조합원 5.6%(기본 3.5%·성과 2.1%) 임금 인상, 파업 참여 조합원에 대한 보상 등이다. 사측은 이에 맞서 5.1%(기본 3%·성과 2.1%) 임금 인상안을 고수하고 있다. 전삼노는 25일만에 총파업을 종료하고 5일 현업복귀를 하지만 ‘장기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사측이 요구사항을 수용할 때까지 준법투쟁 및 게릴라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반도체 쇼크로 OPI 0%된 DS부문, 파업 주도 VS. MX,VD부문은 OPI 적다고 파업한 적 없어

 

그러나 사측이 전삼노 요구를 수용할 경우 노사협의회 인상안을 수용한 다른 직원들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 달 말 현재 전삼노 조합원 수는 3만 6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직원의 30% 수준이다. 그런데 조합원의 90%가 반도체(DS)부문 소속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다양한 사업 부문 중 DS부문 집단이익을 집중적으로 대변하는 게 전삼노의 구조인 셈이다.  

 

이 같은 구조적 편향성은 지난해 반도체 실적 쇼크에서 비롯됐다. 수년 간 지속된 반도체 호황기 동안 삼성전자 내에서 최고의 성과급을 받았던 DS부문은 지난 해 충격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연초에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OPI는 소속 사업부 실적이 연초에 수립한 ‘목표 영업이익’을 넘었을 때 초과이익의 20% 범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다음 해 초에 지급하는 제도이다. DS부문 직원들은 2021년분과 2022년분은 모두 최대치인 50%의 OPI를 받았다. 그러나 2023년분은 0%였다. 13조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폭적인 급여삭감을 당한 DS부문 직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다른 사업부 직원들은 2023년분 OPI를 받아들고 미소를 지었다. 실적이 좋아져서 예년보다 봉투가 두툼해졌기 때문이다. 모바일(MX)사업부는 스마트폰 판매 호조로 50%를 OPI로 받았다. 2022년분은 24%였다. TV를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도 2022년분은 24%에 그쳤는데 2023년분은 43%로 치솟았다. 

 

DS부문을 제외한 MX, VD 등 다른 부문 직원들의 살림살이는 올 연초에 훨씬 좋아졌다.전삼노가 주도하는 파업에 가담할 동기가 없다. MX나 VD 부문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실적 악화로 OPI를 못받았다고 파업까지 하는 DS부문 직원들의 태도에 공감하기 어렵다. 그런 식이라면 DS부문 OPI가 50%였을 때 그 절반 수준인 24%를 받았던 MX 직원들도 단체행동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MX직원들은 OPI가 적다고 파업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전삼노 파업은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이 꼴등을 하고 그 아래에서 놀던 학생들이 치고 올라가면서 벌어진 혼란 사태와 유사하다. 이런 경우 학교가 전교 1등이었던 학생에게만 특혜를 베풀어서는 안된다. 구성원 모두가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사측이 전삼노의 3가지 요구 중 전 조합원 5.6% 인상과, 파업 참여 조합원에 대한 보상을 수용할 경우 공정성이 훼손된다. 꼴찌로 미끌어져서 화가 난 전교 1등학생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전삼노가 제거하려는 EVA, 20여년 전 삼성그룹 차원에서 도입한 경영혁신 

 

더 치열한 쟁점은 ‘성과급 제도개선’이다. OPI의 기준을 기존의 EVA(경제적 부가가치)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자는 요구안은 ‘반혁신성’을 내포하고 있다. 20여년 전에 단행된 삼성전자의 경영혁신을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요구이다. 

 

기존 OPI의 기준인 EVA는 영업이익에서 법인세와 WACC(가중평균자본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뜻한다. 가중평균자본비용은 기업이 투자를 위해서 주식 및 채권 발행, 은행 차입 등을 통해서 조달한 자본에 대한 이자비용을 계산해서 산출한다. 따라서 영업이익이 10조원이라고 해도 EVA는 수조원에 그칠 수 있다. 심지어 영업이익이 흑자여도 EVA는 적자일 수 있다. 

 

영업이익 대신에 EVA를 기준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나 최고경영자의 실적을 따지는 경영기법은 선진국형이다. 1980년 후반 미국에서 도입됐다. 영업이익이나 순이익보다 깐깐한 잣대이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신뢰성이 높다. 삼성전자 DS부문이 벌어들인 돈을 소비하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혁신 경영을 실천할수록 영업이익과 EVA의 차이는 커진다.  투자가 늘어날수록 WACC가 커지는 탓이다.  반면에 CEO가 현상유지에 급급하면 이론상 영업이익과 EVA는 거의 일치할 수도 있다. 

 

삼성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그룹 차원에서 EVA제도를 도입했다. 영업이익이 아닌 EVA가 흑자가 돼야 ‘진정한 흑자’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영업이익보다 EVA가 더 믿음직스러운 개념이다. EVA를 따지는 기업은 망하지 않고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OPI기준을 영업이익으로 변경하면 ‘반혁신성’ VS. EVA 기준 OPI 지급은 인재유출 리스크 높여?

 

따라서 EVA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반면에 성과급이 줄어드는 근로자로서는 손해보는 개념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는 성과급 기준을 EVA로 잡는 게 맞다. 반면에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몸값이 높아지는 반도체 인재의 이탈을 촉진하는 변수로 EVA가 지목된 것 또한 사실이다.    

 

DS부문이 주력인 전삼노가 OPI기준을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다른 부문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즉 MX, VD 부문 등은 ‘무임승차 효과’를 누리게 된다. 영업이익 기준의 OPI 지급은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희망사항이라는 명분을 갖는다. 

 

더 강력한 명분은 ‘인재유출 방지’에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말 성과급 기준을 ‘영업이익의 10%’ 이내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지급하는 PI(생산량 목표 달성 장려금)도 영업이익률에 연동시켰다. 

 

시점도 미묘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호황기가 다시 도래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2분기에 영업이익 6조4500억원을 기록한 삼성전자 DS부문은 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기존 강자인 SK하이닉스와 본격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 지난 해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장악했던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거센 반격에 나서는 추세이다. 자본전쟁뿐만 아니라 인재전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직원의 파업이 억대 연봉을 받는 상위1%의 극단적 사익 추구라는 단선적 비판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혁신성과 인재유출 리스크가 충돌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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