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트럼프가 45년만에 원전에 매달리는 이유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스리마일 섬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원전재앙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곳이다. 섬 전체 길이가 3마일밖에 되지 않아 스리마일 섬으로 불렸던 이 곳에는 1970년대말 2기의 원자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는 두 차례에 걸친 혹독한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터는 원자력과 인연이 깊은 대통령이었다.
그는 1950년대 해군에 복무하면서 원자력 잠수함에 근무했고, 캐나다 초크리버 연구소 실험로 사고를 직접 수습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누구보다 원자력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때마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원전을 중시하는 쪽으로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시도를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를 계기로 무참히 깨져버렸다.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는 미국인들에게 원전은 매우 위험한 것이고, 집 주변에 절대 있어서는 안될 괴물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카터의 획기적인 원전을 통한 에너지 정책변화 구상은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 더불어 뒤이은 재선 실패로 인해 사실상 폐기됐다.
카터를 꺾고 대통령에 오른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해 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아들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원전은 워싱턴 정가에서는 금기시됐던 게 사실이다.
아들 부시에 이어 대통령에 오른 버락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 뒤 원전에 대한 획기적 구상을 밝혔다. 그는 원자력 에너지 관련 R&D 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대대적인 원전산업 부흥에 나섰다.
오바마는 2015년 11월 원전 발전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원자력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데 핵심이 되는 에너지원으로, 미국이 관련 기술과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며 “원자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등 미국의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전폭적인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그 후에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원전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불안심리로 대부분의 주에서 원전 건설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수면아래로 사라졌던 원전이 올해 미국 대선에서는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원전에 대한 미국의 패권부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청정에너지로 꼽히는 원전을 활성화시키려고 하고 있고, 트럼프는 에너지 패권을 위해 원전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접근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원전을 중시하겠다는 방향성은 두 사람 모두 일치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만든 미국은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에서도 종주국으로 통한다. 하지만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 이후 들끓는 국내여론에 밀려 거의 45년간 원전산업을 방치시켰다.
그런 미국이 다시 원전에 눈을 돌리면서 미국의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원자력발전 산업의 판도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바이든은 조지아주를 비롯해 여러 주에 추가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트럼프는 재집권시 추진할 정책에서 원자력규제위원회를 현대화하고, 기존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는 한편 혁신적인 SMR에 투자해 재임기간 중 최고의 원자력에너지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다시 원전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고 해도 미국이 45년간 손을 놓고 있던 사이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SMR을 상업용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역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 원전을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은 단순히 기술력만 갖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국가의 기술을 빌려 원전을 건설하려는 국가의 경우 산업권을 선정할 때 경제성은 물론, 정치지형과 국가간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 미국의 원전산업 참전선언은 세계 원전산업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수출 확대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 역시 다가올 지각변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