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KPC CEO 북클럽] 설혜심 연세대 교수 "한국의 첫 수출품은 '인삼'...이미지 확 바꿔야"
서민지 기자 입력 : 2024.05.30 16:17 ㅣ 수정 : 2024.05.30 16:49
1685년 시암 대사 사절단, 루이 14세에 '인삼' 진상 17~18세기 '만병통치약' 입소문...서구권 연구 시작 19세기 '사포닌' 추출 실패...'오리엔탈리즘' 이미지 추락
[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KPC한국생산성본부가 30일 오전 롯데호텔 서울에서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인 'KPC CEO 북클럽'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리더들의 변화와 디지털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북클럽에서는 설혜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설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현재 사학자이자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역사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기조로 끊임 없이 새로운 주제를 발견해 연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온천의 문화사 △소비의 역사 △지도 만드는 사람 △서양의 관상학 △제국주의의 남성성 등이 있다.
설 교수는 1995년 캘리포니아에서 이른 나이에 박사 과정을 끝낸 뒤, 졸업식을 앞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메리칸 진생 페스티벌'을 우연히 접하고 미국 인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또 19세기 영국 소도시에서 발간된 신문 기사를 모아 둔 데이터베이스에서 'ginseng Korea'를 검색했는데, 자그마치 20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는 인삼이 서구에서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으나 내수화에 실패했는지, 서양은 자체적으로 인삼을 생산하면서도 섭취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한국 인삼의 옛 이름, 고려인삼이 유럽에 등장한 첫 시기는 1617년이다. 영국 동인도회사 일본 주재원 리처드 콕스는 본사에 인삼과 함께 서한을 보냈다. "인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합니다. 한국에서 온 매우 좋다는 인삼 뿌리와 함께 비교해 주시오." 17세기 최초의 인삼 교역인 셈이다.
인삼은 서양에서 귀한 진상품이기도 했다. 1685년 시암(Siam) 대사 사절단이 프랑스에 방문할 당시 루이 14세에게 인삼을 선물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도 인삼의 기력회복 효능을 인정했다.
설 교수는 "자르투 예수회 선교사가 1709년 중국의 지도를 제작하러 갔을 때 이동 중 지쳐 쓰러졌지만, 인삼을 먹고 다음 날 지치지 않고 쌩쌩하게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어 자르투는 인삼 연구에 몰두해 1713년 인삼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삼이 '만병통치약'으로 소문나면서 영국과 프랑스 학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1681년 프랑스 백과사전은 인삼에 대해 "어디서나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만 자란다. 간질과 고열, 만성적이거나 심각한 질환에 쓰인다. 매우 값비싼 식물로 은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17세기 후반 영국 왕립학회는 창간호에서 인삼을 다루기도 했다. 1736년엔 루카스 오귀스탱 폴리오 드 생바스트(Lucas Augustin Folliot de SaintVast)는 세계 최초의 인삼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의 주제는 '인삼, 병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가?' 였다.
18세기 후반에도 약물 학계는 인삼이 △만병통치약 △각성제나 진통제 △강정제(최음제) △해독제 등의 효능이 있다고 인정했다.
설 교수는 "18세기를 풍미한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현재 우리나라의 가수 임영웅처럼 수많은 여성 팬을 거느렸다"며 "루소에게는 정력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가 인삼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삼이 정력제로서 명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인삼은 해외 수출의 효자 상품이기도 했다. 1716년 프랑스 출신 예수회 수사 라피토가 북미 지역에서 인삼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교역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1776년 미국의 첫 수출품은 인삼이었으며, 당시 교역으로 미국은 1500%의 이익을 냈다.
그렇다면 명성을 지닌 인삼이 어째서 서양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설 교수는 19세기 약전개혁에서 인삼의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커피의 카페인, 아편의 모르핀, 담배의 니코틴이 발견됐으나, 당시 기술로는 인삼의 유효성분인 '사포닌'을 정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인삼 채취를 업으로 삼는 심마니에게 오리엔탈리즘이 덧씌워지면서 인삼에 대한 이미지는 추락했다. 미국 심마니를 그린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불법과 폭력적인 인식이 더해지기도 했다.
설 교수는 미국 내 인삼의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마쳤다. "인삼 제품에 전통적인 이미지가 함몰돼 있다. 인삼 화장품을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패키징을 하거나, 미국 최초의 수출품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