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화폐가치 95% 떨어진 아르헨티나 백약이 무효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작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에서 집권당의 경제실정을 집요하게 공격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극우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힘겨운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면서 많은 양의 화폐뭉치를 들고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1만페소짜리 초고액권을 찍기로 했다.
아르헨티나는 작년 5월 똑같은 이유로 초고액권 화폐단위를 기존 1000페소에서 2000페소로 올렸다. 이번에 1년만에 또다시 초고액권 화폐를 새로 내놓은데다, 기존보다 무려 5배 이상 높은 1만페소짜리 화폐를 선보일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물가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1만페소라고 해봐야 달러로 11달러,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1만5000원 정도다. 5년전만 해도 아르헨티나 페소는 1달러당 45페소였는데, 지금은 880페소를 줘야 미국돈 1달러를 바꿀 수 있다. 그나마 공식환율이 그렇고, 암시장에서는 1달러당 1000페소를 넘어선지 오래됐다.
법정 통화의 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하자, 아르헨티나 국민 중 상당수는 월급을 받자마자 곧바로 달러로 환전하는 것이 일상처럼 됐다. 페소가치가 며칠 사이에 5% 이상 떨어지는 상황에서 달러로 바꿔놓으면 그나마 페소가치가 폭락해도 안심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자국 페소를 달러로 바꾸면서 이것이 다시 페소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5년사이 화폐가치가 95% 이상 떨어지는 미친 현상이 일어난 것은 기본적으로 물가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3월 기준 연간 인플레가 287%에 달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태다. 인플레가 극심해지면서 국민들은 별 것 아닌, 물건을 살 때도 뭉칫돈을 들고 다녀야하고, 값비싼 제품을 사려면 큰 가방에 현금을 넣어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웃지못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대선에서 승리한 밀레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페소화를 폐지하고 달러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펼쳤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페소가치 안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페소화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화로 대체하려 해도 그만큼의 달러화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달러화 도입 주장은 말 그대로 공상에 가까운 헛소리라고 야당은 반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달러화 도입을 시도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경제사정이 나빠질 때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달러화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번번이 검토에만 그쳤던 것은 화폐로 쓸만큼 달러화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더욱이 달러화와 페소화를 연계하려면 지금보다 페소화 가치가 더 크게 떨어져야 제기능을 할 수 있어 실제 실현가능성은 더 멀어지고 있다.
다만 밀레이 대통령이 집권 후 페소화 가치를 달러화 대비 54%나 떨어뜨리는 극약처방을 단행해 달러화 도입문제를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지만 이번에 고액권 지폐를 새로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추측은 추측에 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