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은 멈칫, 기업은행은 준비...금융권 ‘노조추천이사제’ 향방은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금융권 주주총회 시즌 때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동력을 잃어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부터 꾸준히 이사회 진입을 추진한 KB국민은행 노조는 올해 후보자를 내지 않았고, IBK기업은행 노조의 경우 준비 중이지만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오는 3월 22일 진행하는 정기 주주총회에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권선주·오규택·최재홍 사외이사는 재선임하는 내용의 안건을 상정했다.
KB금융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는 이 후보자에 대해 글로벌 금융·경제 관련 최고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이 후보자는 우리금융캐피탈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데 KB금융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퇴임할 예정이다.
눈길은 끄는 건 올해 사외이사 선임 관련 안건에 국민은행 노조의 ‘주주 제안’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2017년부터 매년 외부 전문가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해왔다. 2019년에만 후보자의 이해상충 문제로 자진 철회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경영진에 대한 감시·견제 강화를 이유로 제시했지만, 이사회 진입은 매번 실패했다. 지난해의 경우 국민은행 노조가 임경종 전 한국수출입은행 인도네시아금융 대표이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는데, 표결에서 찬성표는 발행주식 총수 대비 6.39%에 불과했다.
기업은행은 오는 4월 7일 사외이사 2명의 임기가 만료되는데 노조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기업은행 노조는 추천할 사외이사 후보를 물색 중이다. 기업은행의 노조는 2019년부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은행 노조는 3명의 사외이사 임기 종료에 따라 법조계·노동계·학계 출신의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는데 끝내 선임되지 않았다. 기업은행의 경우 금융위원회 산하에 있는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은행장이 사외이사 후보자를 제청하면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
같은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먼저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했고, 김성태 현 기업은행장도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정부(금융위원회)에 있는 게 변수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선임된 이근경·전현배 사외이사의 현 정부 관련 활동 이력과 관련해 ‘낙하산’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기업은행 노조의 한 관계자는 “기존 사외이사 임기 종료 시점에 맞춰서 (추천 여부를) 정할 예정”이라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추진에 대한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에선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지만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이다.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노조(직원)의 입장이 지나치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경영 개입 논란과 노사 갈등으로 번질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국민은행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선임 안건이 부결된 이후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은 “정말 주주와 기업 가치를 위해 제안했는지, 개인이나 조직 논리에 너무 매몰됐는지 (노조가) 성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권 노조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추진이 낮은 공감대와 현실적 한계로 동력을 잃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책은행 등 공적 성격을 가진 금융사는 정부 기조에 따라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민간 금융사는 주주 동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은 이사진 구성이나 운영에 대해 고유의 권한이라 주장하고 있어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게 쉽지 않다”며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노동이사가 투입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사회 내에서 무게나 권한, 역할이 제한적인 게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도입 요구가) 이사회가 깜깜이로 된다는 지적도 있고 회의록을 보면 이견 없이 통과된다“며 “공유나 참관 정도 되면 이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