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순 칼럼] 중화질서 강요하는 중국 외교부장 행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결기’ 필요해
한국 무시하는 행위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향후 중국의 오만과 고압적인 자세 계속 마주해야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취임 후 26일이 지난 6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와 첫 통화를 했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외교부 장관과는 취임 다음 날 또는 10일 이내에 전화로 상견례를 했고, 전임 박진 장관은 4일 만에 왕이 부장과 통화를 했다. 왕이 부장은 의도적으로 전화통화를 지연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주중 대사들을 초청해 개최한 올해 1월 1일 신년인사회에서 왕이 부장은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호주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미얀마 등을 거론하며 관계 발전을 강조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역시 고의로 우리를 건너뛴 것이다. 왕이 부장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이러한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거국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 중국 외교부장의 무례하고 오만한 발언과 행동 거듭해서 나타나
왕이는 1982년 외교부에 입부한 후 3년(2004년~2007년)간 주 일본대사를 역임했고, 시진핑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해인 2013년 외교부장으로 발탁돼 현재까지 10년 이상 재직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신임이 두터워 지난해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면서 외교업무를 총괄하는 외사판공실 주임(부총리)을 겸하고 있다. 69세로 은퇴할 나이가 지났으나 그의 후임 외교부장 친강(秦剛)이 면직됨에 따라 다시 외교부장 직책을 수행 중이다.
왕이 부장은 2년 정도 재직하는 우리 외교부 장관 4명을 상대했고 조 장관이 5번째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사드 3불’을 주도했고 무역보복 조치인 ‘한한령(限韓令)’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킨 강경파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 내에서는 ‘한국의 사드 배치는 대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라는 온건론이 있었고 ‘한한령이 지속한다면 한국과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을 비롯한 몇몇 강경파가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면 한국은 스스로 분열할 것이고, 알아서 저자세를 취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왕이 부장의 의견을 채택했다.
왕이 부장은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치는 결례를 범했고, 202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강경화 장관과 회담에 24분 늦게 나타났다. 그는 2022년 8월 박진 장관과 회담에서 우리에게 “중국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국은 중국이 제시하는 5개의 당연한 방침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였다. 우리 외교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이러한 오만한 자세는 대등한 주권국가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언행이어서 우리를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반증이기도 하다. 왕이의 이런 언행은 예하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류진쏭(劉勁松) 중국 외교부 아시아국 국장은 지난해 5월 우리 외교부를 방문해 자신들이 우리와 협력할 수 없는 소위 ‘4대 불가’를 통보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이 친미, 친일 외교정책 지속 시 중국과 협력이 불가하다’라는 것이다. 2016년 12월 천하이(陳海) 중국 아시아국 부국장은 우리의 방한 연기 요청에도 한국을 찾아 기업인을 대상으로 우리의 사드 배치를 비난하면서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 시 주석의 중화질서 세계관 바뀌어야 한국에 대한 인식 정상화될 듯
왕이 부장과 외교부 직원들의 모든 언행은 과거 중화질서 속에서 명(明)-조선(朝鮮) 관계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들의 언행은 개인적인 돌출 행동이 아니며,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 주석의 중화질서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은 ‘시진핑 탐구’라는 저서에서 시진핑은 과거 중화질서 속에서 중국과 한국이 ‘종주국(宗主國)-번속국(藩屬國)’ 관계이었던 것처럼 현재도 우리를 번속국으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2017년 미국 방문 시,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거에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언급했고, 문재인 대통령 특사를 두 차례나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앉게 했다. 중국이 한중 관계를 수평적, 호혜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바로 과거 중화질서 속에서 종주국-번속국 관계인 것이다.
중국의 이런 언행은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 외교부에 사실관계 문의만 했고, 중국이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 없다”라는 동문서답식의 답변을 하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특사 의전 결례 문제에 대해 항의조차 없었다. 이를 지켜본 왕이가 우리를 대등한 주권국가로 인식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왕이를 거의 국가원수급으로 예우하고 있는데 과연 그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하다.
시진핑 시대 이전의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이렇지 않았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중화질서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우리를 자주 독립 국가로 예우했다. 현대 한중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는 주요 원인은 시진핑 주석의 중화질서 세계관이나 그 빌미는 대중 저자세 외교로 일관한 우리 정부가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 북한은 과거에 ‘대만 카드’ 사용해 중국 압박하며 원조 요구도 관철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중국의 압력에도 국익을 관철한 사례로 베트남과 호주를 들었고, 북한의 사례도 있다. 북한은 1993년 경제난인 소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중국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중국은 냉담했다. 북한은 중국에 ‘한국과 수교를 늦추어 달라’고 했으나 덩샤오핑(鄧小平)은 북한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1992년 8월 한국과 수교를 단행했다. 북한은 덩샤오핑을 사회주의 배신자로 비난하면서 관계가 나빠졌고, 중국은 북한의 경제난을 방관했다.
북한이 이런 중국을 움직인 것은 바로 ‘대만 카드’였다. 북한식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북한은 1996년 대만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제공과 1995년 대만 관광 전세기의 평양-타이베이(臺北) 취항을 협의하는 등 대만을 끌어들여 중국을 압박했다. 결국, 중국은 북한의 요구대로 원조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북한-대만의 접근을 저지시켰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 외교의 강점을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한목소리를 내며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북한이 부담스럽고 더 나아가 이런 북한이 미국 또는 러시아와 손잡게 되면 중국 안보에 위협적이라고 생각해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란 얘기다.
■ 동북공정 당시 국민적 대응처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압박 가능
우리도 중국을 한발 뒤로 물러나게 한 사례가 있다.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해 고구려사를 지키자는 외침에 전 국민이 호응했다. 이때는 보수도 진보도 한목소리였고 여당과 야당이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우리의 일치된 외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9월과 10월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시정을 요구하게 이르렀다.
중국도 한국민의 일치된 분노를 외면할 수 없어 2007년 ‘한·중 구두 양해사항’을 교환하고 동북공정의 논란을 종식하기로 했다. 양해사항의 요지는 ‘중국은 이러한 사태에 유념하고, 정치 문제화를 방지하며, 학술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중국이 고구려사를 건드리면 똑같이 국민적인 결기가 나올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중화질서 강요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결기를 보이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구려사 지키기가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는 문제라면, 중화질서를 거부하는 것은 현재의 주권과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도 중국을 압박할 카드가 있다.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NATO, 호주, 인도, 동남아 국가들과도 협력 가능하며, 필요하다면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를 미국과 협의할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는 핵무장 카드도 있다. 핵무장을 한다면 ‘베이징 불바다’ 위협이 통할 것이다. 절박함과 결기, 그리고 한목소리가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왕이와의 상견례 전화에서 “한중 양국이 갈등요소를 최소화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자”고 언급했다.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중국이 우리에게 하는 만큼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결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못하면, 왕이 부장의 우리 대통령 예방도 없을 것이란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 중국의 중화질서 세계관을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중국의 오만과 고압적인 자세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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