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정상화 첫 걸음은 '신뢰 회복'
최근 부동산 PF 발(發)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됐다. 증권사들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이어진 부실 우려 속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까지 겹치며 살얼음판 같던 부동산 PF 시장에 금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쌓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은 가운데, 실제 증권사 부동산 PF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점검해 봤다. 증권업계가 선제적인 구조조정 및 부동산 PF의 조속한 정상화 추진 노력이 필요한 데 따른 해법이 무엇인지도 함께 짚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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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부동산PF 점검-(상)] 고조되는 공포, '선순환 구조' 악화 우려
[증권가 부동산PF 점검-(하)] 시장 정상화 첫 걸음은 '신뢰 회복'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최근 태영건설이 촉발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에 따른 구조 개선이 정해지면서 한숨은 돌렸으나, 증권업계로 번진 PF 불안은 여전하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이 어렵게 확정됐으나, 구조 개선 착수 이후에도 PF 시장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관문이 많아서다.
정부도 태영건설을 비롯한 PF 사업장 정상화를 유도하고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사 건전성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과다한 상황에서 부동산 PF 부실을 걷어내는 해결책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레고랜드발 이후 여전히 불거진 PF 시장 위기를 해소해 정상화하려면, 신뢰 회복에 대한 문제를 우선해결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16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3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3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증권사의 부동산 PF 규모가 2022년 말 대비 각각 4조8000억원과 1조8000억원 늘었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PF 문제에 대해 사업장별 구조조정 여부와 신속하고도 자율적인 결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지름길은 아니란 분석도 나온다.
PF 부실 원인은 부동산 시장 침체 등 다양한 요인 중 부동산 호황기가 끝나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고금리 장기화가 PF 시장 부실에 일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태영건설 사태의 원인은 무리하게 PE 대출 지급 보증 규모를 잡은 기업에도 있으나,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4월 전 금융권이 함께하는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서 시장의 자유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이끌겠다고 했지만 1년도 안 돼서 옥석을 가리겠다며 방향을 급선회하는 등 원칙 없는 대응, 일관성 없는 정책이 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켰고 결국 건설사 줄도산 위기라는 공포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이유다.
그 때문에 무너진 신뢰회복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면서 경제·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할 해법을 찾을 이유다.
금융투자업계도 바닥난 신뢰회복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신년사에서 "부동산 PF 정상화 지원 등 금융시장 불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업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의 문제에 함몰돼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PF 시장 정상화의 첫걸음은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라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지속적인 노력을 요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단기에 해결하려고 돈을 쏟아붓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 내내 부동산 PF 관련 부실 문제가 터지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정부의 당장 위기 방지 효과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려면 분양과 매각 시장이 살아나야 하고, 그것이 곧 신뢰로 연결돼야 한다.
홍 교수는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 다시는 이런 사태(부동산 PF 부실)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준 뒤, 이후 정상화에 착수할 험난한 과정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사가 토지 매입이나 건설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부동산 개발사는 증권사의 신용도를 빌려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PF의 부실화 위험이 커졌다.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대출 익스포저를 보유한 증권사는 대체로 대형 증권사다. 다행인 것은, 대형 증권사의 지난해 9월 말 평균 자기자본 규모가 약 3조5000억원인 점을 고려 시, 자기자본 대비 부담은 대부분 2%~5% 내외로 미미한 편이다.
다만 대형사와 달리 중소형사의 경우 유동성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올해도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증권사 규모별로 실적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도 나온다.
태영건설의 파산 신청으로 인해 증권사들은 태영 관련 PF에 대해 충당금을 적립한 상태다. 태영건설은 증권사들로부터 1조1000억원의 PF 대출을 받았는데 이 중 6000억원이 연체다.
한편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11일 자정까지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 안건인 워크아웃 개시에 대한 결의서를 접수한 결과, 동의율 96.1%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결의됐다고 밝혔다.
태영건설은 소규모 채권단이 상당수 포함됐고 부동산 PF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워크아웃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워크아웃을 통한 기업 정상화가 지지부진했던 경우도 있던 만큼, 태영건설 정상화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워크아웃 개시가 기업 회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도 있다. 사업장을 매각하면 이후 수익을 내서 흑자전환이 쉽지 않고, 해외 사업 수주도 국내 신용이 낮아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상황이 악화하자, 정부가 지금 부동산 PF 이슈에 대해서 언급하는 키워드는 부동산 PF 연착륙, 그리고 옥석 가리기인 만큼 시장 건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논리에 맡긴 PF 재구조화는 이미 시작됐고, 부실 사업장은 싼값으로 새로운 주인을 찾아갈 것”이라며 “정부의 대응방안데로 워크아웃이 질서 있게 진행된다면, 지금 겪는 잠깐의 고통이 시장 회복을 빠르게 앞당길 것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