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업계 세대교체, 2‧3세 경영인 성공할까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제약바이오 산업이 한국경제에서 새로운 먹을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SK와 롯데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오너 3세를 제약바이오 사업 전면에 배치하고 제약바이오 산업을 새로운 캐시카우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전통의 제약사들도 오너 3세를 부사장 이상 급으로 승진시키면서 경영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오너가 3세들은 60대 후반인 제약사 회장(오너 2세)들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머지 않아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제약바이오산업 여건이 녹록하지 않아 오너가 3세 경영자들이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건당국의 까다로운 감독과 핵심사업인 전문의약품들이 병‧의원 영업을 통해서 이뤄지는 사업구조 탓에 경영진 한두 명이 바뀐다고 해서 매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너가 3세 경영자들이 현장에서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며 잔뼈가 굵었는지가 사업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계를 앞둔 3세 경영자들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 SK·롯데 승부수, 제약바이오 산업 신성장 동력
지난 1999년 SK제약(현 SK케미칼)이 개발한 항암제 ‘선플라주’가 국내 신약 1호로 등록됐다. 신약 개발이 전무한 때 SK그룹이 대규모 투자로 이뤄낸 성과였다. SK그룹이 제약바이오 사업에 꽤 진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 대목이었다.
SK그룹은 제약바이오 산업을 3개로 나눠서 운영하면서 SK바이오팜을 신약 개발 위주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부사장을 SK바이오팜 핵심 부서에 배치한 것은 SK그룹의 전략의 일단을 보여준다.
SK그룹은 지난해 말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을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승진발령했다. 그는 역대 최연소 임원(만 34세)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이다. 최 본부장은 소위 '아빠 찬스'로 승진한 게 아니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최 본부장은 SK바이팜의 주요 파이프라인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연구개발(R&D) 자금을 끌어오는 전략투자팀장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이다. 불황에 따른 투자경색기에 전략투자 책임자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버텼다.
최 본부장은 미국 명문 시카고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생명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시카고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연구원과 하버드대학교 물리화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제약바이오 분야 최전문가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경력이다. 여기에 투자총괄 업무를 수행한 만큼 최 본부장은 SK바이오팜을 경영 일선에서 이끌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롯데그룹이 공들여 출범한 신생기업이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넘어야 산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출범 초 인력 확보를 놓고 경쟁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갈등을 빚었다. 또 수주 물량이 적은 탓에 기업 운영에 적잖은 자금이 들어가 재무상태가 불안정하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위해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켜 중책을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다. 롯데지주 미래전략실 전무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전무)이다. 롯데글로벌로직스의 글로벌 수주 영업을 책임지는 자리다.
롯데그룹이 신성장동력인 CDMO 사업에서 신 전무가 핵심 부서를 총괄하게 됨으로써 그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놓였다.
■ 전통제약사, 영업력 차근차근 쌓아 온 오너 3세만이 승계 완료 가까워
전통제약사들도 오너가 젊은 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동화약품와 대원제약, 제일약품 등 은 오너가의 3세, 4세 젊은피로 경영진을 바꾸고 있다.
동화약품에서는 오너가 4세인 윤인호 부사장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자다. 윤 부사장의 지휘 아래 동화약품은 전문의약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디지털의약품 사업에도 진출하며 신규 먹을거리 창출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친구 경영'으로 유명한 삼진제약도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 조의환 회장의 장남인 조규석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동생인 조규형 부사장도 올해초 승진했다. 또 최승주 회장의 장녀인 최지현 사장과 차녀 최지선 부사장도 있다. 최 사장은 영업 업무를 총괄하며 삼진제약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다.
대원제약 사장도 승계에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백인한 대원제약 사장은 지난해 7월 부친인 백승호 회장에게 증여받아 지분율 5.93%를 확보해 입지를 확고히 했다. 또 경영총괄사장으로 승진한 그 역시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대원제약은 다수의 감기약 포트폴리오로 코로나19 특혜 기업으로 떠올랐는데 백사장이 엔데믹 상황에도 매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상철 제일약품 사장도 지난해 승진하며 경영권 승계를 절차를 밟고 있다. 한 사장은 오너가 3세로 한승수 회장의 장남이다. 지주사인 제일파마홀딩스 대표이사 사장까지 올라가며 승계 절차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한 회장이 올해 77세이기 때문에 회장 등극도 머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광동제약은 최성원 회장이 지난해 말 승진하면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 최 회장은 오너 2세로 부친(창업주)인 고(故) 최수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지난 1992년 광동제약에 입사해 30여년간 제약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2000년 영업본부장을 거쳐 2013년 대표이사, 2015년 부회장에 올랐다.
광동제약은 최 명예회장이 2013년 타계하면서 최성원 회장이 경영 전반을 지휘했다. 이 시기 광동제약은 의약품 제조 판매업에서 음료와 건강기능식품 제조 유통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결과는 좋다. 주력 제품인 삼다수와 비타500, 옥수수수염차, 헛개차 등의 매출이 의약품 수익을 크게 앞질렀다. 최근 광동제약은 건강기능식품 사업 확장과 화장품 제조, 판매까지 진출했다. 전통 제약사의 명맥을 잇지 않는 모습이다. 광동제약에서 30여년을 몸담은 최 회장이 어떤 승부수를 꺼낼지 제약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경영전략과 경쟁력있는 제품 개발, 빈틈없는 영업이 필요하다. 제약사로 남아 성장하겠다면 전문의약품 위주의 사업 성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오래전 신약 개발을 시작해 최근에서야 성과를 보고 있는 것은 그 방증이다. 반면, 광동제약처럼 사업 다각화로 성장을 꾀하는 제약사도 있다. 오너가의 젊은 경영자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너가'라는 방패 뒤에 안주하기보다는 시장 흐름, 업계 투자 방향, 소비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선구안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쟁력있는 제품 개발이라는 '창'을 먼저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