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예금에 몰리는 뭉칫돈···추가 금리 인상은 ‘글쎄’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한 달 만에 12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벌어진 은행들의 금리 경쟁이 잠잠해진 이후 정기예금 금리도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고객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최근 2금융권에서 잇따라 터진 위기설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증시 부진으로 투자처를 잃은 자금이 은행에 몰리는 ‘역(逆) 머니무브’ 현상도 정기예금 증가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8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44조9671억원으로 7월 말 대비 11조9859억원 늘었다. 7월 역시 전월 대비 약 10조원 늘어났는데, 한 달 만에 증가폭이 더 확대됐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발(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은행들은 정기예금으로 자금 조달에 나섰다. 당시 금융당국의 ‘은행채(금융채) 발행 자제령’으로 자금 조달 경로 한쪽이 막히자 수신금리를 올려 대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은행간 경쟁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대까지 올랐다. 올 연초부터 금리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며 정기예금 잔액도 줄었는데, 4월부터 증가 전환한 뒤 현재까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70~3.85%로 형성돼 있다. 한국은행이 올 1월부터 현재까지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은 이보다 0.2~0.3%포인트(p) 높은 수준에서 정기예금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금리 인상 등의 이벤트가 나오지 않아도 시중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늘어나고 있는 건 최근 새마을금고 등에서 터진 부실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장 높은 금리를 주지만 불안한 2금융권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중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나 위기설 같이 2금융권에 대한 불안 심리가 커졌다. 상품을 해지하거나 만기 뒤 재가입을 하지 않은 분들이 몰리는 것 같다”며 “물론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작년 말과 비교하면 낮지만, 수치만 보면 여전히 높은 편이라 찾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증시가 조정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은행 상품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관망하는 대기성 자금이 안전 자산인 정기예금에 몰리는 역 머니부브 현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을 향하는 자금 유입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정기예금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와 달리 높은 금리(이자)를 지급해가며 자금을 조달할 필요성이 크지 않은 데다, 자칫 수신금리 인상이 대출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권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는 수신금리 경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4.34%까지 치솟았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취급한 예·적금 등 수신금리에 동행해 움직인다. 은행권이 정기예금 금리를 인상하면 주담대 변동금리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최근 들어 지금의 금리가 고점이냐는 문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미세한 조정이 이뤄질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크게 올릴 만한 요인이나 명분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