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 기자 입력 : 2023.08.16 01:00 ㅣ 수정 : 2023.08.16 01:00
이르면 올해 10월 중고차 시장 진출 '눈앞' 정보 비대칭성 난무하는 시장의 신뢰성 높여야 중고차 시장, 소비자 만족도 높이는 완전경쟁 체제 돼야
[뉴스투데이=김민구 기자]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맛집’이라는 간판을 붙인 식당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막상 이들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속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물론 맛집으로 알려진 모든 식당 음식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때문이다. 정보경제학 일종인 정보의 비대칭성은 경제학자 제임스 A. 멀리스(James A. Mirrlees)와 윌리엄 비크리(William Vickrey)가 199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이들은 양측 정보가 불균형이거나 불완전할 때 벌어지는 경제 상황을 연구해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앞서 언급한 식당을 예로 들면 맛집 식당 주인은 음식에 대한 정보를 손님보다 많이 갖고 있다. 때로는 형편없는 음식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맛있는 음식처럼 포장해 판매한다.
주인 말을 믿고 음식을 주문한 손님은 만족스럽지 못한 음식에 후회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의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
중고차 시장도 정보의 비대칭성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이다. 중고차 시장에 가면 차량을 판매하는 업자는 차량이 과거에 사고를 냈는지, 또한 홍수에 휩싸여 침수된 적이 있는지 등 차 상태를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러나 구매자는 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고차 판매업자들이 차량 상태를 고객에게 100% 솔직하게 알려주는 사례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고차 판매업자는 보유한 차량을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고 손님은 차량 상태를 모두 알 수 없어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에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양측의 이러한 첨예한 심리전 양상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비교적 상태가 좋은 중고차가 거래되기보다는 가격이 싼 그저 그런 수준의 중고차만 거래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장에서 상태가 좋은 제품이 사라지고 저품질 제품이 가득한 시장을 ‘레몬마켓(Lemon Market)'이라고 부른다. 양측간 정보의 비대칭성에 정보가 충분하게 교류되지 않아 거래된 중고차는 겉은 레몬 표면처럼 화려하지만 속은 신맛을 낸다는 얘기다.
레몬마켓으로 낙인이 찍힌 중고차 시장은 결국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중고차 시장에서 품질이 좋은 차량이 외면당하고 오히려 저품질 차량이 거래되는 ‘잘못된 선택’이 이뤄진다. 역선택과 도덕적해이가 횡행하면 시장은 황폐되고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만만하지 않은 중고차 시장에 현대자동차그룹이 뛰어든다.
현대차·기아는 이르면 오는 10월 인증 중고차 판매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가 2020년 10월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사업을 시작하는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출시 5년 이내에 주행거리 10만㎞ 이하 자사 차량만을 대상으로 철저한 품질 테스트를 거쳐 검증된 차만 판매한다는 계획을 밝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실현되면 불투명한 시세와 미끼 매물, 부실한 성능 점검 등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중고차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중고차 시장이라는 ‘불신의 늪’을 휘젓는 ‘메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중고차 판매업은 10년 가까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들이 발을 디딜 수 없었다. SK그룹은 사업 확대에 제약이 커지자 중고차 거래 플랫폼 SK엔카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파는 신세가 됐다.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 업종 해제 이후에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고차 매매업계가 대기업 진출을 막아 달라며 정부에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을 요청해 이에 따른 갈등이 3년 넘게 지속됐기 때문이다.
2022년 3월에서야 중소벤처기업부 내 생계형 적합 업종 심의위원회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해 완성차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들도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길이 활짝 열렸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이 중소업체 텃밭이었고 이에 따른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소비자 불평·불만이 쏟아졌다면 이제 중고차 시장도 완전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
중소 중고차업체 생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겠지만 소비자들이 제값을 주고 그것에 걸맞는 제품을 얻을 수 있는 선택과 소비자 편익이 보장돼야 함은 물론이다.
중고차 시장이 중소업종이라는 고장 난 레코드판을 틀어놓은 채 소비자 불만과 불신을 조장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현대차 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그동안 만연됐던 불합리와 소비자 권익 침해를 해소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