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검찰의 ‘돈 봉투 리스트’ 실명 유출 사태, 윤석열 표 검찰 개혁 퇴색시켜
검찰, 불확실한 정황 증거만으로 돈봉투 의원 리스트 언론에 유출, '정치 개입' 논란 자초해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원칙으로 삼는 등 검찰 개혁 강조해
백혜련 의원실 "최고위원 출마해서 선거운동 하러 간 자리에서 돈봉투 받았겠느냐" 반박
김승남 의원실 "당시 선거관리위원이고 윤 의원 만난 사실 없어...어떻게 돈을 받느냐"해명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검찰이 일부 언론을 통해 흘린 '돈 봉투 수수 의혹' 더불어민주당 의원 리스트로 인해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실명이 공개된 의원들이 당연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실명 공개가 총선 살생부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해당 의원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이 현 상태에서 정치적 피해를 입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검찰이 봉투 수수 의혹을 제기한 의원들에 대해 미약한 정황 증거만을 제시하면서 실명을 유출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오명을 뒤집어 쓴 셈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일꾼이다. 이들이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쉽사리 매도당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단순한 추정만으로 국회의원을 범죄자 취급 하는 것은 정치 혐오주의를 부추길 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2021년 4월 28일 국회 본관 외교통상위원회 소회의실(당시 송영길 대표가 외교통상위원장이었음)에서 열린 ‘송영길 후보 국회의원 지지모임’에서 윤관석 의원이 참석한 의원 10명에게 300만원이 돈 봉투를 건넸다는 것이다.
이들 10명 의원 실명을 조선일보가 공개했는데 검찰 취재 경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4일‧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돈 봉투를 수수한 정황이 있는 19명 의원 실명을 공개했다는 것 정도만 거론됐다.
검찰 주장 중 가장 허무맹랑한 것은 '돈 봉투 수수 정황'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를 통해 실명이 공개된 돈봉투 수수 의혹 의원 중 특히 더불어민주당 백혜련(수원 을) 의원의 사례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백 의원실의 해명에 따르면, 돈봉투를 수수했다는 2021년 4월은 백 의원도 최고위원 후보자이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한창인 시기였다.
백 의원실 관계자는 “송 전 캠프의 일원이 아닌데 지지모임에 나갈 이유도 없으며, 최고위원 선거 전을 위해 의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을 뿐”이라면서 “사람이 많은(10명의 의원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돈 봉투를 주고받는 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백 의원이 득표 활동을 하기 위해 의원들이 모여있는 외통위원장실에 찾아갔다가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돈봉투를 받는 상식 밖의 행동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백 의원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고발 조치했다. 또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를 요청한 상태다.
또 문화일보도 윤 의원으로부터 돈 봉투를 받은 의원 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들 중 4명은 지역구가 호남권인 의원들이다. 김회재‧김승남‧이용빈 의원은 검찰을 공수처에 고발했으며 김윤덕 의원은 현재 법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 5명의 의원들은 의원회관에서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았다고 하는데 정확 어떤 방법으로 수수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김승남(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의 경우 당시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이라 송 전 대표의 캠프에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인데 윤 의원이 돈 봉투를 줬다는 건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윤 의원을 만난 사실이 없는데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어떻게 받냐”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호남권 의원 4명이 거론된 것에 대해 “검찰이 이정근 녹취록이라는 허무맹랑한 정황으로 그러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정근 녹취록은 돈 봉투 살포 관련해 검찰이 갖고 있는 증거 중 하나다. 이 녹취록에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윤관석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이었음)이 윤 의원에게 “오빠, 호남은 해야 돼”라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다. 검찰의 돈 봉투 사건과 관련 의혹 있는 의원들의 명단 노출은 이를 감안하지 않은 처사다. 실명이 노출된 의원들은 의혹이 있을 뿐 피의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돈봉투 수수의혹 리스트가 일부 언론에 유출된 것은 검찰 '정치 개입' 논란을 자초하는 것이다.
지난 5일 조선일보 보도로 10명의 의원들이 실명 노출로 피해를 봤고 논란이 됐는데도, 이틀 후인 7일 문화일보가 경쟁적으로 5명의 추가 의원 리스트를 보도한 것은 검찰의 전략적 언론 플레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피의자 인권 보호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포토라인도 없앴다. 하지만 지금은 돈 봉투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의원들은 피의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실명을 노출했다. 윤 대통령 표 검찰 개혁은 어디 간 것일까.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의 인권을 추락시키는 게 과연 정치적‧사회적으로 올바른 행위인지에 대해 검찰은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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