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빚투' 주의보...포모 확산 우려, 대응 나선 증권사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최근 국내 증시가 이차전지주에 이어 초전도체에 대한 투자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금융당국 또한 과열된 시장 상황을 우려하며 증권사에 선제적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테마주 투자 열기에 편승한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신용융자 확대는 빚투를 부추길 수 있어서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초만 해도 19조3358억원이었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지난 7일 기준 20조3448억원으로 한 달 새 1조원가량 늘어났다.
앞서 지난 4월에도 ‘무더기 하한가’ 사태 당시 신용거래융자 잔액 규모가 20조원을 넘긴 바 있다.
이차전지 중심의 상승세가 계속되자 '포모(FOMO·자신만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상)' 심리가 빠르게 번지면서 빚투 규모도 불어났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은 돈을 뜻한다. 특정 종목의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이자를 부담하면서까지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것이다.
이때 주가가 오르면 원금 대비 큰 수익을 얻지만, 주가 하락 시에는 증권사가 반대매매에 나서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차전지 및 초전도체 관련주들의 주가 조정으로 빚을 갚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진다면 '반대매매'로 인해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초전도체 테마의 경우 주중 내내 위아래로 강한 변동성을 보였다”며 “뉴스플로우에 따라 변동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현재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뀔 시 비우호적 상황이 전개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탁매매 미수금 규모도 적지 않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빌린 금액을 결제일(만기)까지 갚지 못한 금액이다.
지난 2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은 5403억원으로 연초(1000~2000억원대) 대비 180% 급증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미수금이 7734억원을 찍으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증권사에 일정 비율의 증거금만 납입하고 주식을 사는 미수거래는 2거래일 내 미수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매수한 주식이 강제 청산되는 만큼 위험이 따른다.
문제는 이차전지뿐 아니라 초전도체 테마주 중심의 쏠림 현상으로 옮겨지면서 ‘빚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관련 주가는 급등락을 오가며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이차전지 대장주인 에코프로비엠(247540)은 17.25% 급락했고, 같은 날 에코프로(086520)도 19.79% 주저앉았다. 에코프로는 지난 26일 장중 신고가를 경신했다가 순식간에 급락한 바 있다.
초전도체 관련주들도 국내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최근 연일 상한가에 도달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초전도체 물질(LK-99)이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응집 물리 이론 센터(CMTC)의 발표가 나오자 관련주들이 일제히 폭락했다.
아직 초전도체 관련주는 이차전지를 이을 새로운 테마로 꼽히며 '묻지마 투자' 광풍이 불었던 만큼, 커지는 회의론 속 초전도체 관련주의 향배가 주목된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차전지 업종 주가 급락에 그동안 쏠렸던 수급이 차익실현 매도세로 전환되거나, 특히 초전도체 테마가 형성되면서 수급이 초전도체 관련주로 옮겨가는 점도 이차전지 업종의 낙폭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의 쏠림 현상에 따른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증권사는 신용거래융자 금리를 인하해 주거나, 비대면 거래 고객에게 더 싼 금리를 적용해 주는 등 고객 유치에 적극적이어서다. 증권사의 금리 인하 마케팅이 자칫 과열된 투자심리와 만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신용융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 마케팅을 하는 등 영업기회로 삼는 회사들이 있다”며 “고객입장에서 보면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유리한 부분이 있겠지만 빚투를 조장한다고 보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과도한 투자 열기를 잠재우고 빚투 리스크를 막고자, 이차전지주에 대한 신용거래를 중단하는 등 관련 서비스를 닫으며 대응에 나서고 증권사도 있다.
삼성증권(016360)은 지난 4~5월에 걸쳐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에이치엔에 대한 신규 신용거래를 닫았으며, 최근에는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제공하는 투자 고수들의 국내 주식 종목 랭킹(순위) 서비스도 중단했다.
한국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도 에코프로 관련 종목에 대한 신규 신용거래를 중단했고, 하나증권도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등 변동성이 높은 종목에 대해 신규 신용거래를 중단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달 말부터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포스코홀딩스·포스코퓨처엠·LS네트웍스 등 12개 종목에 대해 신규 신용거래를 중단했다.
NH투자증권(005940)은 지난달 26일부터 포스코홀딩스(005490)·포스코퓨처엠(003670)·에코프로비엠·포스코인터내셔날(047050) 등 종목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 등급을 A에서 C로 하향했다. 그 결과 종목담보유지비율은 140%에서 170%로, 증거금은 30%에서 40%로 상향됐다.
미래에셋증권(006800)과 유진투자증권 등도 지난달 말 이차전지 관련 종목 상당수에 대해 신용증거금을 올린 상태다.
KB증권은 이차전지 관련주 중 일부 종목에 대해 신용공여(신용·대출)를 제한하고 있다. 그 외 종목들은 신용공여가 가능하지만 종목별 한도를 최소한으로 부여해 과도한 레버리지 사용을 제한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대응은 갑작스러운 하락 시 반대매매가 늘면서 증시 조정이나 급락으로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비스가 자칫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일 임원회의에서 초천도체와 이차전치 등의 테마주 열풍에 대해 시장 과열과 '빚투'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금융사 내부통제 실태를 철저히 분석·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 금감원장은 "최근 테마주 관련 주식시장 급등락과 관련해 단기간에 과도한 투자자 쏠림, 레버리지(빚투) 증가, '단타' 위주 매매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