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비상금 쌓은 4대 금융···건전성과의 전쟁 시작된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금융지주가 올 상반기 9조원 넘는 당기순이익을 시현했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수익의 근간이 되는 대출 자산 곳곳에서 건전성 악화 신호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지주들은 최대 조 단위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부실 방파제를 쌓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회사 내부에선 적어도 올해 하반기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올 상반기 합계 당기순이익은 9조182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8조9824억원) 세웠던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순이익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개별 회사로 보면 KB금융이 올 상반기 2조996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2.2% 늘어난 규모다. 이어 신한금융 2조6262억원, 하나금융 2조209억원, 우리금융 1조5386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금융지주의 ‘실적 파티’는 이자 이익과 비(非)이자 이익의 동반 성장에 기인한다. 4대 금융지주가 올 상반기 얻은 이자 이익만 약 19조8482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4.5% 증가한 규모다.
4대 금융지주의 올 상반기 비이자 이익 합계는 6조911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0% 급증했다. 이자 이익에 의존한 성장에 한계를 느낀 금융지주들이 자산관리(WM) 등의 분야를 강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금융지주의 관계자는 “금리가 높게 형성돼 있어도 이자 이익이 작년만큼은 크게 안 늘어나는 흐름”이라며 “이번 실적을 보니 금융지주들의 비이자 이익 증대 노력이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도 4대 금융지주는 상반기 실적 발표 중 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고금리 여파로 연체율 상승과 부실채권(NPL) 증가 등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의 경우 ‘여신 건전성 악화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각 금융지주 은행 계열사의 올 6월 말 연체율을 전년 말과 비교하면 △국민은행 0.16%→0.23% △신한은행 0.21%→0.27% △하나은행 0.20%→0.26% △우리은행 0.22%→0.29%로 일제히 상승했다.
총여신에서 3개월 이상 연체돼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NPL)이 차지하는 비율도 올 상반기 0.19~0.27%를 기록했다. 가계와 기업 등 은행 대출 자산 곳곳에서 건전성 악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4대 금융지주가 쌓은 충당금 규모를 보면 향후 금융시장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KB금융은 올 상반기 총 1조3195억원의 충당금을 전입했는데, 전년동기 대비 117.4%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신한금융도 올 상반기 1조95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다. 1년 전과 비교해 67.7% 많은 충당금을 쌓았다. 하나금융(7774억원)과 우리금융(8178억원)도 같은 기간 충당금을 84.1%와 64.6% 늘렸다.
충당금은 신용 손실로 인한 이익 변동성 축소 등 경영 불확실성 완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회계상 비용을 처리돼 당장 순이익을 깎아먹는다. 금융지주들이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건전성 우려가 잔존하면 비용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올 하반기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나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부실채권이 점증하고, 경기 침체 우려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4대 금융지주는 앞으로도 보수적 충당금 정책으로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하겠단 방침이다. 당장의 순이익 성장보다는 자산 건전성을 안정화시키는 데 경영 방향을 설정했다. 실적의 경우 올 상반기 정점을 찍고 둔화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그룹이 쌓는 충당금은 은행 뿐 아니라 카드와 증권 계열사의 업황도 고려해 규모가 정해진다. 사업 특성상 따라오는 리스크 강도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한다”며 “경기 전망과 스트레스 체크 같은 걸 진행해 하반기 방침을 정할 텐데, (충당금) 규모를 줄이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