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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80)

유달리 인연이 많았던 정형진 장군의 통합메트릭스 신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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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3.01.31 15:55 ㅣ 수정 : 2023.02.08 09:33

북한의 적화노선으로 1960~70년대에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
필자와는 7년, 장인과는 24년의 지휘관 교대 인연인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정형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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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장인 故 강철(종합1기) 대령과 정형진(육사30기) 장군의 80연대장 시절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60년대와 70년에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에 따라 남한의 혼란을 유도하고 지하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 1.21사태와 10월~11월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1969년 3월16일에 주문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6월에는 흑산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연달아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정권은 미국에 보복공격을 요청하는 한편 국민의 반공체제 강화에 주력하여 1968년 4월에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때를 맞춰 1969년 GOP 경계를 담당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고 사단예하 80연대의 작전지역에서 논두렁에서 비트를 파고 숨어있던 무장공비를 연대지원 포병부대 병사들이 발견하여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필자가 근무하던 1993년에 80연대장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정형진 대령(육사30기)이었다.

 

그는 필자가 처음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던 중동부 전선의 승리부대에서 성공적인 중대장 근무를 했는데 7년 뒤에 우연하게도 필자가 그 중대장으로 보직되는 등 유독 인연이 많았던 선배였다.  

 

게다가 정 대령이 지휘한 80연대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던 1969년도에 필자의 장인이 연대장으로 재직했던 부대이기도 했다.

 

필자의 장인 故강철 대령은 평북 정주군 출신으로 해방후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서북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공산당의 폭정이 너무도 가혹해 결국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이후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 정경학부에서 공부하다가 6사단 7연대에서 병사로 입대했을 때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헌데 입대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응시했던 보병학교 간부후보생 3기생에 합격 통지서를 받아 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1기로 교육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11사단에서 일선 소대장, 대대참모, 소총중대장으로 생사의 갈림길인 치열한 전투에 참전하다가 휴전을 맞이했다.

 

이후 비둘기부대 작전참모로 2년 동안 월남전을 참전하여 대령으로 진급한 장인은 80연대장을 마치고 특전사 작전참모, 육군본부 교육과장직을 수행했다. 

 

마지막 보직인 1사단 부사단장으로 땅굴탐지 작전을 지휘하다가 25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는데, 2년 뒤에 시추했던 그곳에서 제3땅굴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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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 장군의 승리부대 9중대장(좌측사진 중앙) 시절 함께 근무했던 홍문호 중사(좌측사진 맨 우측)는 7년 뒤에 9중대장으로 근무한 필자(우측사진)와도 같이 근무했다[사진=정형진/김희철]

 

정형진 장군, 말레이 국방무관 시절에 최초로 우리 장갑차 해외 수출 등 많은 성과 올려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빈번하던 24년 전에 장인(故 강철 대령)이 근무했던 80연대장직을 맡은 정형진 장군은 위관 시절에 승리부대 예하 9중대장을 역임했고 그 9중대를 정 대령이 성공적으로 지휘한지 7년만에 필자가 다시 인수하여 9중대장직을 수행한 특이한 인연을 갖고 있다.

 

정형진 장군은 지난 1974년 육사 30기로 임관하여 중령 시절에 인천 송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안지역 대대장을 마치고 주 말레이 겸 인도 국방무관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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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 장군의 생도 및 대대장 시절 모습[사진=김희철]

 

그곳 말레이에서도 최초로 우리나라 장갑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등의 많은 성과를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국방무관 근무자중에 특별하게 1차로 대령으로 진급하여 80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정보분야 참모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던 정형진 대령은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최우수부대를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연대장을 마치면서 사단 참모장직까지 탁월하게 끝내고 결국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어 합참정보융합실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 육군정보학교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한 뒤 육군소장으로 전역했고, 이후 단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를 거쳐 2020년 1월부터는 김포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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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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