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외풍에 날아간 성과, 금융사 CEO 인사의 씁슬한 단상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금융사 수장은 성적순으로 정하는 게 아니었다. 최근 진행된 신한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 등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는 결과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신한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최근 차기 회장으로 조용병 회장이 아닌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조 회장의 용퇴는 예상 밖이었다. 올해 KB금융지주를 제치고 ‘리딩뱅크’를 탈환하는 등 실적 개선을 이끌어 3연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용퇴 배경에 관심이 몰렸다. 조 회장은 자신의 용퇴 이유로 ‘세대교체 필요성’과 ‘라임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신한금융으로서는 자칫 금융당국 사정권에 들어설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리스크를 덜어내기 위해 조 회장을 다시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지난 6월 채용비리 사건 무죄를 확정받으며 사법리스크를 덜어낸 데다 라임 사태는 당장의 현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시각이 많았다.
대신 언론 등 금융업계에서는 조 회장 용퇴와 관련해 “용산에서 전화가 왔다”거나 “새 정부에서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 등의 정부 외압설에 주목했다.
지난해 사상 첫 순이익 2조원을 돌파, 올해 실적 갱신이 유력했던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연임이 불발됐다. 손 회장은 실적뿐 아니라 3개월 만에 중도 퇴임한 초대 회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농협금융 첫 내부출신으로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웠던 터라 연임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농협금융의 선택은 손 회장이 아닌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었다. 비(非) 관료 출신의 성장스토리는 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고 농협금융은 잠깐의 쉼 이후 다시 경제 관료 출신 회장을 맞이하게 됐다.
때마침 농협금융을 지배하고 있는 농협중앙회는 회장 중임이 가능하게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에 현 정권과 밀착해 있는 이 전 실장을 낙점한 배경을 두고 ‘외풍’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보통 기업의 CEO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으로 경영 능력을 꼽는다. 하지만 금융사의 경우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대부분 내부 요인보다 외부요인, 이른바 ‘외풍’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그리고 이 바람은 정치 권력, 과거엔 청와대 지금은 용산 혹은 여의도에서 불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기우일 수도 있다. 권력의 압력이나 직접 개입이 아닌 정책집단과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한 인물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금융사의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결국 정치 권력이라는 외부 변수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또한 넓은 범위에서 ‘관치’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관치는 정책 연계를 통한 효율성, 금융의 공공성 회복 등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치금융은 높은 확률로 정경유착을 유도한다. 우리는 IMF 사태로 관치금융의 부작용을 뼈저리게 실감한 적 있다.
실적이라는 객관적 지표보다 예측할 수 없는 외부요인이 인사에 작용하게 된다면 금융사로서는 경영 일관성 유지하고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CEO가 거둔 성과가 결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내부 동력도 쉽게 꺼질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적표와 무관하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누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할까.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당시 ‘금융사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결과론 적으로 ‘관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출신 관료들의 적극적인 금융권 진출로 인사 구설은 물론 금리와 대출 등 은행 경영에 대한 개입은 ‘신(新)관치’라는 용어까지 낳았다.
금융사도 CEO 자리가 권력 집단의 전유물 혹은 전리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관치라는 고리를 끊을 만한 해답이 마땅치 않다.
금융업은 규제산업이다. 자칫 민간 자율에만 맡겼다가 국가 경제 등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필요에 따라 정책적 요구는 물론 취업제한 등 CEO에 대한 징계 권한도 일부 가지고 있다. 결국 이 같은 권한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축소하거나 공익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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