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 기약없는 출금지연 사태...‘코인런’ 불안 여전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 사태 여파로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의 예치 서비스 원금‧이자 지급 지연 사태가 길어지면서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22일 고팍스에 따르면 자사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자유형 상품 원금과 이자 지급이 일주일 가량 지연되고 있다. 지난 16일 공지 이후 일주일 가량 입출금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파이는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에 대해 예치 기간 동안 이자수익을 가상자산으로 지급하는 상품이다.
고팍스 홈페이지에 공개된 총 누적 예치금만 21일 기준으로 약 4만4000비트코인(BCT)에 달한다. 한화로 약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은행 예금처럼 자유형과 고정형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자유형 상품은 예치기간 없이 자유롭게 가상자산의 입출금이 가능하다.
반면 고정형 예치상품은 모집 기간 내 가상자산을 예치하고 만기일이 도래하면 원금가 이자수익을 받는 구조다.
이 중 자유형 상품의 이자와 원금 지급이 지난 16일 이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파이는 가상자산 트레이딩 및 커스터디 업체인 ‘제네시스 트레이딩’의 자회사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고객들이 가상자산을 맡기면 이를 제네시스가 운용하고 고팍스가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다. 제네시스 트레이딩의 모회사는 글로벌 가상자산 투자회사 디지털커런시그룹(DGC)으로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의 2대 주주(지분 13.9%)이기도 하다. 1대 주주(41.22%)는 이준행 고팍스 대표다.
이자 지급 지연사태는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의 자금 1억7500만달러가량이 최근 파산 신청한 글로벌 거래소 FTX에 묶이 면서 불거졌다. 지난 11일 FTX 파산 신청으로 상환 요청이 급증하자 제네시스는 신규 대여 및 상환을 잠정 중단했다.
이에 고파이 서비스 상환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자유형 상품의 원금과 이자 지급이 이뤄지지 않게 된 것이다.
고팍스는 지난 16일 공지에서 “고팍스는 고객 자산의 보호를 위해 모든 자산에 대한 상환을 요청하였으나 상환은 아직 실시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를 지급받기 위해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 및 모회사 DGC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환 중단 공지 이후 아직까지 지급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만기가 도래하는 ‘공정형’ 상품의 원금과 이자 지급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출금 지연 공지 이후 첫 만기 도래 고정형 상품은 ‘BTC 고정 31일’로, 오는 23일 오후 11시 59분 예치가 끝나고, 24일 오전 10시 30분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제네시스 트레이딩이 이날까지 고파이 고객 자산을 상환하지 않으면 고정형 상품의 원금·이자 지급도 이뤄질 수 없다. 일반 은행 적금 상품과 달리 만기가 도래하기 전 해지할 수 없어 고객이 미리 원금회수를 위한 선행 대응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고팍스도 지급 여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고팍스 관계자는 “(지급 지연 사태 해결을 위한) 소통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 새롭게 추가 된 내용은 없다”며 “고정형 상품의 경우도 만기일이 돼봐야 (지급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치금에 대한 지급 지연이 지속될 경우 고팍스에 대한 신뢰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FTX사태와 관련한 유동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게 되면 일반고객 예치자산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코인런’이 발생할 우려도 커진다. 고파이에서 불거진 불안이 고팍스 이용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코인런으로 부를 만한 대규모 인출 사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고파이 지급 지연 공지 후 지난 17일까지 빠져나간 일반 고객의 예치 가상자산은 약 48억원 정도로 이 전과 비교했을 때 출금액이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게 금융당국과 업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지급 지연 사태가 고정형 상품까지 이어진다면 더 이상 안심하긴 어렵다.
앞서 고팍스는 공지를 통해 “고파이에 예치된 자산과 고팍스 일반고객 자산은 분리 보관되어 있어 일반 고객자산에는 영향이 없다”며 “고팍스에 예치된 고객님의 자산은 100% 이상 보유 중으로 입출금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팍스의 유동성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의 지난해 말 기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 예치금이 29억원인 반면, 현금성 자산이 26억원에 그쳤다. 유동성 자산은 352억원에 달해 수치상으로 예치금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충분한 지급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유동 자산 대부분이 가상자산(92억원)과 투자가상자산(131억원)으로 구성돼 있어 변동성이 크다. 현금성 자산보다 가상자산 규모가 큰 곳은 5대 원화마켓 거래소 중 고팍스가 유일하다.
빗썸의 경우 최근 공시한 올해 3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290억원으로 1년안에 갚아야하는 자금으로 분류되는 유동부채는 9171억원, 이중 회원 예치금은 8664억원이다. 두나무도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으로 유동자산이 1년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6조765억원에 달했고, 유동부채 4조9591억원이었다. 투자자 예탁금을 의미하는 예수부채는 이보다 적은 4조6117억원 규모다.
코인원과 코빗도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각각 3726억원과 866억원으로, 2783억원과 706억원의 투자자 예치금보다 많이 확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팍스 관계자는 “(자산 보유 구성은)경영상 선택의 문제”라며 “현재 지급 100%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고 지금까지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돼왔다”고 유동성 우려를 일축했다.
다만 유사 상황을 대비해 추가 자본 확보에도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지금은 지급 불능상태가 아닌 지연된 상황”이라며 “다만 보수적으로 접근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경영진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추가 투자 유치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