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융지주 회장 연임 문제 오롯이 경영 능력만 보고 따지자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미국 월가에 있는 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는 거의 20년 가까이 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지주는 계열사도 많고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성과나 리스크, 수익성을 면밀히 따지며 장기 플랜으로 움직여야 한다. 임기를 짧게 가져가면 경영 전략 수립에 있어 연속성이 없어질 수 있다.”
최근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 연임 문제와 관련해 이 같이 지적했다. 통상 주어지는 3년이라는 임기 내 중장기적 경영 전략을 전개하기 어렵고, 단기성과만 추구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에 회추위(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 5대 금융지주 중 3개(신한·우리·NH농협) 금융지주 회장이 임기 만료에 따라 줄줄이 연임 시험대에 오른다. 함께 임기가 끝나는 주요 시중은행장 역시 연임 준비에 나섰다.
연말 인사 태풍을 앞두고 시장에선 다양한 관측이 쏟아진다. 어떤 회장은 무난히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점치는 반면, 어떤 회장은 연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다. 최근 금리 상승 수혜로 모든 금융지주 실적이 우상향하고 있지만 각 회장들의 앞날은 엇갈린다.
오너 기업이 아닌 금융지주는 항상 변화에 대비한다. 금융시장 변화가 아닌 내부 변화다. 특히 현재 재직 중인 회장의 임기 마지막 해에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계열사 수장들의 물갈이 뿐 아니라 자칫 그동안 설계한 경영 전략도 손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첫 해 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발표한다. 이 비전이 3년짜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장 파악과 이행 준비를 거쳐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성과가 나올 만하면 바로 임기 종료에 대비해야 한다. 대형 인수합병(M&A)은 계획만 세우다 바통을 넘길 수도 있다.
경영 능력이 입증된 회장이 연임하는 게 조직과 주주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다. 견제 장치인 이사회의 핀셋 검증은 둘째 치고 다(多)연임에 대한 사회적 눈초리와 정부·정치권 입김 등 외부 요인을 이겨내야 한다.
특히 최근엔 금융권에 뿌리박힌 관치(官治) 논란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경영권에 가해지는 외풍을 막아줘야 할 당국이 관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결정하는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니 이런 불만도 이해가 간다.
지난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16년 간 경영한 제이미 다이먼 CEO에 500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주며 “더 있어 달라”고 붙잡았다. 회사가 성장하는데 경영 기간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왜 금융 선진국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경영 기간에 제한을 두는 법안까지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다. 금융지주 내부적으로는 만 70세 이상 회장은 연임할 수 없다는 조항도 존재한다. 이사회에서 얼마든 없앨 수 있지만 당국 눈치에 엄두도 못 낸다. 주주의 목소리보다는 당국의 눈초리가 더 살벌한 게 현실이다.
2001년 국내 첫 금융지주 설립 이후 약 21년 역사상 회장 연임 문제는 언제나 화두였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되풀이되지 말란 법 없다. 논란의 중심에 회장 경영 능력이 아닌 관치가 자리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앞으로는 결함 있는 인물은 철저히 걸러내고, 적임자에는 통 큰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 아래 경영 기간이 아닌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더 유능한 인물이 나오면 전임자가 물러날 줄 아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당국 역시 외풍 논란을 부르는 행보보다 제도·감독 강화로 금융시장 선진화를 유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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