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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35)

부대이전사업을 통해 얻은 보람과 애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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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12.17 17:12 ㅣ 수정 : 2021.12.20 09:50

따끈한 보이차 속에 전해진 교훈... ‘공수래공수거시인생(空手來空手去是人生)’의미처럼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무상(人生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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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수방사 근무에 적응되어 업무가 제법 익숙했지만 애환을 느끼며 비참하고 처절하게 추락하던 상황과 격무로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가던 시절, 그날도 역시 자정이 다된 시각에 퇴근을 했다.

 

주간에는 훈련하던 헌병(군사경찰)들의 요란한 고함소리와 활동으로 분주했던 장소였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고독해진 연병장을 남산탑의 불빛만이 밝게 비추었다.  

 

사무실을 나와 군인아파트 숙소로 내려가며 연병장을 바라보던 필자의 마음도 왠지 구멍이 뚫리며 허전하고 외로운 상태가 되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으며 부대안에 있는 법당 앞을 통과하는데, 마침 법사가 밖에 나와 을씨년스럽던 연병장과 남산탑을 보고 있다가 필자를 발견했다.

 

“김소령님, 늦은 시각 이제야 퇴근하시네요...”하고는 “잠깐 법당에 들어와 차나 한잔하시고 같이 퇴근하시죠..?“라며 필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비구승인 조계종에 소속된 군종법사들은 전후방 각지에서 병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기 때문에 결혼이 가능하다. 그 법사도 결혼을 하여 필자의 아파트 윗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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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수방사 연병장 자리에 조성된 필동의 ’남산골 전통정원‘ 안내도와 소나무 뒤의 남산타워 모습 (사진=김희철)

 

■  정성스레 달인 보이차 몇 잔을 마시자 온몸이 달아오르며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혀...

 

법사의 방에 끌려 들어가 다도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법사는 커피포트의 가열 스위치를 올리고 옆에서 버섯같이 생긴 보이차 덩어리를 쪼개어 차를 준비하며 “김소령님, 이것은 보이차라는 것인데 몸에 좋습니다. 한번 마셔보셨나요..?”하고 말문을 열었다. 

 

다도(茶道)란 차와 더불어 참된 사람의 길을 걷자는 천리(天理)를 행한 구심적인 행위를 말하는 데 비하여 다례(茶禮)는 차를 마시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예의범절, 즉 예(禮)나 몸가짐 그리고 차와의 조화를 중심으로 한 분위기와 지식 등을 일컫는 것이다.

 

사람(人)·귀신(神)·부처님(佛)에게 차탕을 바치는 예의를 다례라고 하며, 이러한 다례의 종류가 많은데 신라·고려·조선 왕조의 조정에서는 이웃 나라의 사신을 영송하는 다례와 왕실의 궁중다례, 유가·불가·도가의 종교적인 다례, 여염집에서의 손님맞이 다례 등이 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다례는 통상 차를 마시는 간단한 예법을 일컫는 실용다법을 뜻한다.

 

난생처음으로 정성스레 달인 보이차 몇 잔을 마시자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했다. 군인아파트 같은 동의 윗집에 살고있는 법사도 필자가 수방사에 처음 보임되어 힘들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헌데 법사의 정감어린 덕담과 강의를 통해 찻잔을 잡는 법과 마시는 요령 등 다례를 배우며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지난 시간들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보내고 따뜻한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법사는 보이차를 따르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필자에게 서산대사의 임종게([臨終偈)로 알려져 있고 불교 의식집인 ‘석문의범(釋門儀範)’의 영가법문(永嘉法文)에 수록된 구절인 ‘공수래공수거시인생(空手來空手去是人生)’를 화두로 던졌다.  

 

즉 사람은 빈손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죽을 때도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므로, 뜬구름 같은 삶을 사는 동안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인생을 초연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라며 필자가 겪고 있던 애환과 비참하고 처절하게 추락하던 상황에 대해 위로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9~134)]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어 비상(飛上)한다” 참조)

 

또한 공왕공래(空往空來)라고도 할 수 있고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의미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무상(人生無常)도 같은 뜻이라며, 오늘의 역경이 훗날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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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수방사 자리에 조성된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 입구에 건립된 ’충정사‘ 법당 모습 (사진=김희철)

 

■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중심에 있던 ‘자랑, 즐거움, 보람’의 수방사 필동 시대 막을 내려...

 

수방사 간부식당 입구 정면의 잘보이는 벽에는 ‘자랑, 즐거움, 보람’이라는 구호의 액자가 걸려있다. 이는 수방사 전부대원이 항상 마음 속에 지니고 근무하는 자세로 전역자들을 포함한 장병들 사이에서는 물론 간부들도 늘 강조하며 자긍심을 높이는 ‘자·즐·보’라는 약어로 불려졌다. 

 

또한 ‘장교구락부’안에 있는 ‘상관의 믿음, 동료의 사랑, 부하의 존경’이라는 명언은 고 완벽한 사회인의 자세를 견지하는 간부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으로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필자가 법사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수방사 생활에 익숙해질 때 즈음, 5.16 및 12.12사건 등 격변하는 역사 소용돌이 속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중심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했던 필동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 한강 남쪽 남태령 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미 국방부에서 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지만 당시 수방사령관 구창회 중장(육사18기)은 과거 12.12사건 때에 참모장으로 근무하며 사단장으로 모셨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수방사 이전 계획을 별도로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 

 

사실 5공화국 특성상 육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장관 등의 군 지휘계통을 초월하여 수방사령관은 청와대에 분기별로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 보고하는 관례가 있었다. 물론 보고할 때마다 격려금도 두둑이 받았다.

 

이는 과거처럼 유사한 우발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통령 자신을 마지막까지 경호하는 근위부대인 수방사를 강력히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현재 정황의 시각에서 볼 때에 적절하지는 않지만, ‘자·즐·보’의 구호 아래 자긍심을 갖고 대통령을 호위하는 근위부대의 위상에도 걸맞았고, 필자가 소속된 작전과에서 그 보고서를 작성하고 준비한다는 긍지와 충성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자 풍수지리 전문가인 지관을 모셔 이전할 곳의 건물 방향과 사무실 위치를 결정하고 설계를 다시 수정했으며, 수방사 이전 후에 필동 지역을 인수한 서울시는 1998년 우리 고유의 전통을 살리며 계승하는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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