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본 청년취업대란(12)] 블라인드 시대 생존법은 ‘자충수펙’ 버리고 ‘페이스펙’ 공략

안서진 입력 : 2020.08.25 05:33 ㅣ 수정 : 2020.08.25 05:33

불필요한 인턴경험, 높은 학점 조차도 '자충수펙'으로 전락/면접이 중요해지면서 '좋은 인상'이 또 다른 승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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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안서진 기자] 국내 공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자의 출신 대학, 성적 등을 기재하지 않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지 4년이 지났다. 최근에는 상당수 대기업을 넘어 일부 중소기업으로도 확산되는 추세이다. 

치열한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취준생들 입장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이 반갑지만은 않은 일 같다. 제도 변화에 맞춰 또 다른 변신을 거듭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충수펙'과 '페이스펙'이라는 신조어는 채용제도 변화에 따라 좌충우돌해야 하는 청년층의 애환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블라인드 채용에서 어떤 스펙이 무력화되는 것일까.  정부가 지난 2017년 7월 발표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에 따르면, 채용 과정에서 성별, 나이, 출신 지역, 학력 등 편견 요소는 배제돼야 한다. 오로지 직무수행 능력만으로 지원자를 평가하여 선발한다.
 
이에 따라 취준생들이 입사지원서를 빼곡하게 스펙으로 채우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듯이 자격증과 공모전을 쫓던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직무와 관련 없는 자격증이나 지나치게 과한 스펙들을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평가하는 추세도 보인다. 
 
그래서 나온 신조어가 '자충수펙'이다. 자신의 행마가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인 바둑 용어 ‘자충수’와 ‘스펙’을 합친 신조어다. 지원하는 기업과 해당 직무역량과 무관한 자격증이나 인턴경험을 했을 경우, 자충수펙이 된다. 건설회사에 지원하면서 화학공장 인턴을 하면 자충수펙이다.
 
심지어 지나치게 높은 학점도 자충수펙이 될 수 있다.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유명대학 간호학과 졸업생이면서 수석에 가까운 학점을 가진 학생의 경우 오히려 채용을 꺼리는 심리도 있다"면서 "공부에 전념해온 최상위권 학생이 병원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취준생들은 ‘자충수펙’을 덜어내고 ‘페이스펙(Face+Spec)’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도 발견된다. 이 신조어에는 서류전형보다 면접이 중시되는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직무역량'과 더불어 '좋은 인상'이 최대 승부처가 된다는 나름의 인식이 깔려있다. 
 
실제로 블라인드 채용 방식에서 가장 큰 관건은 바로 면접이다. 면접관이 지원자의 스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만큼 블라인드 면접에서 지원자가 직무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물론 지원자의 외모와 인상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취업정보사이트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채용 면접관 883명을 대상으로 ‘채용 면접에서 첫인상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6.2%가 지원자의 첫인상이 면접에서 높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매우 높은 영향을 미친다’ 39.8%, ‘조금 높은 영향을 미친다’ 55.3% 등으로 조사됐으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답변은 13.8%에 그쳤다.

 

이처럼 면접이 최대 변수로 언급되다 보니 면접 과정에서 호감 가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외모를 가꾸려는 취준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휜 코, 축 처진 눈매 등 우울하고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취준생들은 본인이 약점으로 생각하는 얼굴 부위를 개선하는 취업 성형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자소서 등에 첨부하는 사진에 '뽀샵'을 하는 것은 취준생들 간에 '상식'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충수펙'이나 '페이스펙'은 모두 취준생들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자조적 심정'을 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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