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비밀번호 도용사건 다시 제재키로
[뉴스투데이=정승원기자] 금융감독원이 인위적 사퇴거부로 방향을 잡은 손태승 우리금융회장을 잡기 위해 1년도 더 지난 사건을 꺼내들었다. 우리금융과 손 회장이 최근 금감원이 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린데 대해 금감원 제재에 불복해 소송에 나서기로 하자 해묵은 비밀번호 도용사건을 다시 꺼내 상처주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우리은행 영업점 직원이 고객의 휴면계좌 2만3000여개의 인터넷·모바일뱅킹 비밀번호를 무단 변경한 사건을 다음달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 DLF 사건에 이은 두 번째 우리은행 제재심으로 이 역시 CEO인 손태승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우리은행 비번도용 사건은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은행 일부 영업점 직원들은 2018년 7월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휴면계좌의 비밀번호를 임의로 활성화시켜 새로운 거래실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용된 휴면계좌는 2만3000여개에 달하는데 우리은행이 자체 감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금감원에까지 통보한 내용이다.
당시만 해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금감원이 지금 시점에서 새삼 이를 다시 문제삼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겠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손 회장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시점이 묘하다. 손 회장이 DLF 사태에 대한 중징계에 반발해 법적대응 카드를 통해 연임 강행 의지를 밝히자 금감원이 해묵은 비번 도용 카드까지 꺼내들어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손 회장에 대한 DLF 관련 중징계는 다음달 금융위원회를 거쳐 정식으로 은행측에 통보될 예정이다. 은행이 통보를 받는 시점부터 손 회장은 3년간 금융기관에 취업할 수 없기 때문에 3월 정기주총에서 연임을 할 수 없게 되지만 법적 대응으로 이를 무효화시키면 연임에는 문제가 없다.
이같은 조짐에 금감원이 주주총회 전에 손 회장이 소송과 연임을 포기하도록 총력전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미 우리금융 이사회는 손 회장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신뢰를 보여줬다. 손 회장측이 중징계에도 불구하고 연임을 강행하려는 가장 큰 배경이다.
우리금융 이사회가 손 회장의 연임을 적극 지지한 것은 손 회장이 보여준 실적 때문이다. 손 회장은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 이어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는 등 경영성과를 인정받았다.
손 회장 역시 연초 상반기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올해 경영목표로 ‘신뢰·효율·혁신’으로 정하고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금융을 1등 은행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부가 관치금융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은행의 민영화 이후에도 경영진의 거취를 좌지우지한다는 의심과 불신이 시장에는 팽배하다. 손 회장이 오죽 억울하면 금융당국의 결정에 불복하고 법정다툼까지 가는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심정적으로 동정이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