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13) 중등비행훈련, 특기교육 그리고 졸업식의 파노라마
중등훈련 중에 착륙바퀴 내려오지 않아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언젠가 하와이에서 C-172로 단독비행을 할 때였다. 해질 무렵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착륙을 위한 접근을 하고 있었는데, 관제탑에서 ‘타 항공기에 비상 (emergency)상황이 발생해서 그러니 잠시 현재 위치에서 holding 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중등비행 훈련 시절이 생각났다.
한번은 이착륙 훈련 중에 Landing gear(착륙바퀴) down이 되지 않았다. 즉, 착륙하려면 바퀴가 내려와야 하는데, 동체 안에서 바퀴가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그때 T-37 C 비행시간이 7~8시간 정도 되던 때였다. 비행교관도 잠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순간 필자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교관이 하는 조작을 잘 지켜보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체착륙을 하면 되지 않겠어?’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행교관이 몇 가지 조작을 한 후에 다시 Landing gear down lever를 당기니 착륙바퀴가 내려왔다. 착륙바퀴가 정상으로 내려갔는지 여부는 조종석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항공기 비상상황’이라고 하면 엔진 고장 등에 의한 불시착을 주로 생각하는데, 위와 같이 착륙 바퀴가 내려오지 않거나, 무전기 고장, 플랩(Flap. 고양력 장치의 일종) 비정상 작동 등 정상적인 항공기 운항에 저해되는 상황이 모두 포함된다.
비행 중 통신두절 등 비상상황 겪으면서 안정감 얻어
필자가 개인적으로 비행할 때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중 황당한 경우가 Radio failure(무전기 고장) 상황이었는데, 비행장 외곽 7~8 마일 정도에서, 아무리 관제탑을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착륙 단계라서 고도가 낮으므로 최악에는 휴대폰으로 관제탑에 연락을 하려했다(참고로 고도가 너무 높으면 휴대폰 통화가 안된다.
필자 경험에는 3000 ~ 4000 ft 이상 고도에서는 통화가 안되었다). 혹시나 해서 계기판의 Circuit breaker를 reset 하고 교신을 시도하자 그제서야 관제탑과 교신이 되었다. 관제사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이런 비상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면(이를 해결하면) 비정상 공중상황 조우시 훨씬 안정감 있게 대처할 수 있다.
손 흔들어 주는 등산객은 비행중 최고의 위안
한편, 그해따라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었다. 그 당시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다만 학과장 내에만 대형 에어컨이 있어서 비교적 시원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항공기 조종석 내부에도 냉방기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종석 내부 전체가 시원하지는 않고 국부적으로만 시원함을 느끼는 정도였다. 게다가 엔진 출력 정도에 따라 에어컨의 냉각기능이 차이가 생겼다. 즉, 100 %로 엔진 출력을 높이면 냉방기능이 좋아졌고, 엔진 출력을 줄이면(착륙 접근시 등등) 냉방기능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비행을 마치고 내려오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제트 비행시간 12시간째이던가. 지리산 부근 공역에서 공중조작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려운 몇가지 공중조작 훈련을 마치고 다음 과목을 준비하면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봉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 등산객들이었다. 갑자기 교관이 조종간을 잡더니 산 정상 부근에서 배면비행을 한다. 몇 초간의 짧은 순간, 필자는 등산객들이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왠지 그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행교관이 얘기한다. “(몇 초간) 휴식 잘 했지? 다음 과목을 진행하자”. 정말이었다. 몇 초간의 배면비행이, 등산객들이 흔들어 주는 손이 심신을 맑게 해주었다.
어느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비행하기 전에는 훈련지역의 기상예보를 미리 확인하는데, 그날은 예보도 좋았고, 훈련 공역의 실제 기상도 좋았다. 대기중에 먼지도 구름도 없는 깨끗한 하늘에서 훈련비행 중이었고, 광양만 20,000 ft 상공에서 바라본 지상과 해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이렇게 깨끗한 하늘과 같이 비행도 잘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신감의 저하와 함께 비행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행적성 부적합 평가 받고 참담함 느껴
초등 비행훈련 때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즐겁게 비행훈련을 즐겼는데, 중등비행훈련 입과해서는 건강문제로 인한 체력저하 등등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하는가...
며칠 후, 다른 교관과 함께 재평가 비행을 하였다. 나름 재평가 비행은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행교관은 필자에게 비행적성이 맞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하면서 브리핑을 마쳤다. 초등 훈련 때같이 한번 더 기회를 달라는 얘기도 나오지 않았다. 참담했다. 공군에서의, 인생에서의 첫 실패라고나 할까...공군에서 조종사가 안된다는 것은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나이어린 4학년 생도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생도대로 다시 돌아가서 나머지 학과 수업과 졸업식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4학년 가을...얼마 후 생도대로 돌아와서 다시 생도 일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졸업식이 있는 다음해 4월 초까지 시간은 필자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희망도 꿈도 없는...그해 겨울에 교육사령부로 특기교육을 받으러 떠났다. 필자는 통신 특기를 신청했고, 통신 특기를 부여 받았다.
다음해 2월 말까지 특기교육을 마치고 생도대로 복귀했다. 3월 초가 되어서는 각종 특기 교육을 받던 모든 동기생들이 모였다. 졸업식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생도대에서 임관전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기간에는 졸업식 예행연습 및 장교임관에 따른 각종 교육을 받았다.
4월 초에 졸업 및 임관식이 거행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졸업식이 진행되었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졸업생이 단상에서 그 유명한 옆걸음으로 가면서 주요 귀빈 및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 악수 장면이 나에게도 현실이 되었음을 가슴으로 느끼며, 주요 귀빈을 거쳐 대통령 앞으로 나아갔다.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필자가 대통령 앞에 서자 필자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최 소위! 축하하네!’ 라고 짧고 묵직하게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필자가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
사관학교 졸업 후 첫 임지는 '금시초문'인 강원도 지역 부대
드디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가 되었다. 양쪽 어깨에는 소위 계급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4년 간의 험난한 과정을 거친 후 얻은 영광(졸업 및 임관)인데, 왠지 허전했다. 비행훈련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이었으리라.
그러나 돌이켜보면 사관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4년간은 폭풍같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비록 비행훈련은 끝까지 마치지 못했지만,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멋진 군 생활을 하자고 필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졸업식 이후에 며칠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휴가 이후, 필자를 비롯한 다수의 동기생들은 작전사령부로 집결해서 약간의 행정처리 이후에 차후 보직을 부여 받았다. 필자가 가야하는 부대는 강원도 모 지역의 부대이다. 왠만한 공군부대는 생도 시절에 명칭이나 위치는 들어 보았는데, 이 부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부대이다. 그것 참.......(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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