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은행권, 촘촘한 대출 관리로 ‘연말 대란’ 되풀이 막아야
작년 말 ‘대출 난민’ 속출한 대란 사태
총량 복원에 은행 가계대출 영업 재개
안정·일관성 있는 정책 운용할 필요성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연초부터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적용했던 각종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대출 실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찝찝함은 남아있다. 유독 연말에 집중돼 온 ‘대출 대란’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계감 때문이다.
지난해 8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9조원 넘게 불어났다. 시장금리 인하와 부동산 회복 등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역대급 증가폭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억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는 완만하게 둔화해 지난해 12월 1조원대 초반에 그쳤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되기까지 시장 혼란은 불가피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으로 대출을 내주던 은행들의 영업 활동은 연말로 갈수록 급격히 위축됐다. 당장 가계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의 대출 구멍은 점점 좁아졌다. 필요한 만큼의 가계자금을 빌리지 못하고 은행 영업점을 떠도는 ‘대출 난민’이 속출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 과정에서 단행한 인위적 금리 조정도 논란을 불렀다. 대부분 준거(기준)금리에 더해지는 가산금리 인상으로 전체 대출금리를 끌어올렸다. 원리금 부담이 늘어야 대출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차주에 적용되는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가계부채 관리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주기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야기되고 있다는 건 우려스럽다. 은행들은 연중 규제가 느슨해지면 공격적 영업으로 대출 자산을 잔뜩 늘려놓고, 연말쯤 관련 지표가 들썩이면 부랴부랴 대출을 걸어 잠갔다.
이 같은 대출 대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올해 은행권 영업이 재개됐다. 해가 바뀌고 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 총량도 초기화됐다. 일각에선 지난해 연말까지 억눌려있던 대출 수요가 몰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올해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예고된 만큼 금리 측면의 환경도 우호적이다.
올해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가계부채 관리 역량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정적이고 일관된 대출 운용 정책이다. 당장은 학습효과로 타이트한 대출 태도를 유지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은행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대출 운용 노선을 급격히 바꾸는 건 경계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기존 연간 단위로 관리돼 온 은행권 대출 총량 관리 주기를 월별·분기별로 좁히기로 한 건 긍정적이다. 보다 촘촘한 관리로 한도 소진에 따른 연말 대출 대란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은행들도 시기·주기별 적정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예외 없이 준수하며 자금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바란다. 일관성 없는 대출 정책은 고객 신뢰 저하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