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단상(物流斷想): 스위스를 가다 (下) - 유럽 물류의 허브(Hub).. 우리랑 비슷하네!
[뉴스투데이=김승한 경기대 겸직교수,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단장] 스위스는 지도를 보면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독일, 프랑스, 이태리와 맞닿은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물류 관점으로 보면 교차로 역할을 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철도와 항공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스위스 연작의 마지막 3편은 스위스 물류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동아시아 물류 허브로서의 미래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 스위스 물류의 초기 역사
스위스는 중세 시기부터 알프스를 넘나드는 중요한 교역로를 제공해 왔다.
초기에는 산길과 강을 통해 물자가 이동되었는데, 이런 자연적 도로 네트워크가 만든 대표적인 교역로로는 알프스 산맥을 넘는 고타드 패스(Gotthard Pass)와 심플론 패스(Simplon Pass)가 있었다. 이 통로들은 중세 유럽의 상인들과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히 우편과 교역 네트워크가 발전하던 16세기에 스위스는 유럽 우편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베른과 취리히는 유럽 각국으로 향하는 우편 및 상업 통로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철도의 도입은 스위스 물류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1847년 개통된 첫 철도 노선은 취리히와 바덴을 연결하는 구간이었다.
철도는 스위스의 지형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러 철도 노선이 알프스를 넘는 터널과 연결되면서 스위스는 유럽 대륙의 중요한 물류 허브로 자리 잡게 된다.
1882년에 고타드 터널이 완성되면서 스위스의 철도 물류는 유럽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이 터널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 중 하나로, 북부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이 되었다.
• 철도의 발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와 열차의 기록
스위스가 유럽 철도 물류의 허브가 된 이유는 알프스를 꿰뚫는 터널 건설에 기인한다.
1882년에 첫 고타드 터널에 이어, 1906년 심플론 터널 개통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연결, 알프스 넘어 남부 유럽과의 연결을 더욱 강화했다. 심플론 터널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 중 하나였다.
또한, 1913년에는 스위스 중부에서 남부로 향하는 로이치베르크 터널이 건설됨으로써 알프스를 통과하는 또 다른 중요한 물류 경로를 확보하게 된다.
20세기 초반부터 철도 기술은 더욱 발전되었고, 산악 지형의 급한 경사와 날씨 극복을 위해 디젤과 전기로 운행되는 열차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전기 철도로의 전환으로 더 효율적인 물류 운송이 가능해졌고, 특히 알프스산맥을 넘는 구간에서 에너지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철도망 발전은 2016년 완공된 알프스 터널 프로젝트인 ‘고타드 베이스 터널’이다.
고타드 베이스 터널은 총 길이 57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이며, 기존의 고타드 터널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화물 및 여객 운송이 가능해졌다. 이 터널을 통해 스위스 경유 화물 운송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를 운행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스위스 철도의 기술력과 물류 효율성을 자랑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총 중량 약 3천톤에 달하는 총 100개의 화차가 연결된 기차의 총 길이는 1.9km에 달했고, 고타드 베이스 터널을 포함하여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프레다(Preda)에서 알불라(Albula) 구간을 지나 베르네이나(Bergün)까지 운행했다.
• 스위스 항공물류의 역사
스위스의 지리적 위치는 철도뿐만 아니라 항공물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스위스 항공물류는 주요 국제공항을 기반으로 빠르게 발달했으며,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1931년 스위스 첫 항공사인 Swissair가 설립되었고, 주로 우편물과 소량의 화물을 국제적으로 운송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스위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항공물류도 더욱 발전했다. 특히 취리히 공항과 제네바 공항이 국제 물류 허브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상품이 항공을 통해 전 세계로 운송되기 시작했다.
스위스 항공물류의 주요 화물은 다양하지만,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과 시간이 중요한 화물이 많이 처리된다. 스위스는 전자제품, 시계, 제약, 금융 문서와 같은 고가의 상품들이 많아 항공물류가 필수적이다.
예로 바젤과 제네바는 제약 산업의 중심지로, 많은 제약 회사들이 항공을 통해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데, 특히 스위스는 냉장 운송 기술을 이용하여 백신, 의약품 등 온도 민감성이 높은 제품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스위스는 고급 기계와 전자제품을 많이 수출하는데, 이러한 고가 제품은 빠른 운송이 필요하기 때문에 항공 운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상품인 시계 역시 주로 항공을 통해 운송된다.
현재 스위스 항공 화물 운송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전자상거래의 확대로 인해 국제 항공 물류의 수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도 스위스는 항공 화물 운송을 통해 중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스위스의 항공물류는 빠른 운송 속도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고부가가치 상품과 제약 제품을 수송하는 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
• 스위스의 글로벌 물류회사들
Kuehne+Nagel(퀴네 나겔)은 1890년 설립된 글로벌 물류회사로서 본사는 취리히 근처 피히텔리콘에 소재하고 있다. 해상운송, 항공운송, 육상운송, 계약물류 등 글로벌 포워딩 분야의 세계 1위 회사이다. 전 세계에 약 13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Panalpina(파날피나)도 바젤을 기점으로 1935년에 설립된 글로벌 대형 포워딩 업체이다. 전 세계에 걸쳐 종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며, 특히 항공과 해상운송에서 강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관리를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2019년 덴마크의 물류 대기업 DSV에 인수되어 현재는 DSV Panalpina로 합병된 상태로 운영 중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우편물류 발전을 배경으로 1849년 설립된 스위스의 국영 우편 서비스 회사인 Swiss Post(스위스 포스트)는 베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요 서비스로는 우편 및 소포 배송, 전자상거래 솔루션으로, 국내외 물류 서비스도 제공한다.
특히 스위스 내에서의 소포 및 우편 물류는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전자상거래가 성장하면서 빠른 배송 솔루션에 강점을 보인다. 또한, Swiss Post는 유럽 전역에 걸친 소포 및 화물 운송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 동아시아 물류허브인 K-물류와도 유사하네
스위스가 유럽의 물류 허브가 된 이유는 ‘교차로’라는 지리적 특성이 원인이긴 하겠지만, 관련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낸 불굴의 도전정신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임이 분명하다.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도 ‘교차로’라는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육상세력과 해상세력이 맞부딪치는 고난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알프스산맥이라는 험난한 여건에서 철도를 연결하고, 우편물류를 위해 항공을 발전시킨 스위스의 물류 역사는 어쩌면 근대 한반도에서 일어난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포화 속에서도 꿋꿋이 단시간 내에 한반도의 기적을 이뤄내고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로서 성장한 한국 물류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또한,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항공물류를 발전시킨 배경도 스위스와 한국은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유럽 내륙의 지리적 조건보다 육상과 해상,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글로벌 물류 허브로 성장하는데 더 다양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고, 언젠가는 다가올 통일 한반도의 상황을 가정할 때도 결코 K-물류의 미래는 스위스 물류보다 더 큰 세계사적인 역할을 요구받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