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단상(物流斷想): 스위스를 가다 (上) - 철도, 연결 그 이상의 가치
[기사요약]
스위스를 9박 10일 일정으로 다녀와.. 총 3회에 걸쳐 스위스 경험 소개, 첫 번째로 스위스 기차, 철도 이야기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역, 아이거산 관통하는 산악열차로 연결
물류 관점에서 당시 유럽의 가장 높은 곳에 철도역 만든다는 것, 당연히 도전해보고 싶은 과제 아니었을까?
철도와 같은 물류인프라, 단순 연결 넘어 각기 다른 연방 ‘통합’ 이루는 데 핵심 역할 담당했을 것
여행기간 동안 SBB앱 활용, 아무리 AI가 고도로 발전해도 문제 발생 시 “물류는 결국 사람이 중요”
[뉴스투데이=김승한 경기대 겸직교수,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단장] 스위스를 9박 10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운 좋게도 지인이 독일에 가까운 취리히(북쪽)와 이태리에 가까운 루가노(남쪽)에 집을 갖고 있어서, 이들 두 곳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짧은 기간에 스위스 전역의 9개 도시를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살인적인 스위스 숙박비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 더욱 마음 가벼운 여행이었다. 참고로 우리 모텔 수준의 호텔의 경우 일박에 30~40만원 수준이다.)
사실 이태리 밀라노공항 인/아웃 일정이어서 초반 이태리 베로나에 오페라 축제를 다녀온 일정을 빼면, 실제로는 6~7일 동안 스위스의 9개 도시를 다녔던 셈이니 빡빡한 패키지 일정 아니었겠나 추측들 하실 수 있지만, 직접 스케줄을 계획해서 다녔던 자유여행 일정이었다.
이런 스케줄이 가능했던 이유가 전적으로 스위스 전역을 촘촘히 연결한 철도를 포함한 교통 인프라의 힘이고, 스위스 연방 철도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인 SBB앱의 힘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고로 스위스 면적은 41,290km²로, 대한민국의 41% 정도 크기이다.)
총 3회에 걸쳐 스위스의 경험을 소개하려 하며, 그 첫 번째로 스위스 기차,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 철도의 끝판왕, 융프라우 산악열차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 1위인 스위스에서 관광객들이 꼽는 베스트 포토 스팟은 어디일까? 단연 융프라우를 배경으로 빨간 스위스 국기를 찍는 곳이 아닐까 한다.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해발 3,454m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역(Jungfraujoch)은 아이거글렛처역(Eigergletcher)에서부터 아이거산을 관통하는 산악열차로 연결되어 있다.
융프라우 철도의 구상은 1893년 스위스 기업가인 아돌프 구이어-젤러(Adolf Guyer-Zeller)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1896년에 착공, 아이거 산(Eiger)의 북쪽 면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야 했기 때문에 공사는 매우 어려웠고, 여러 난관 끝에 마침내 1912년 융프라우요흐역까지 철도가 연결되며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한다.
20세기 산업혁명은 철강의 역사이고, 물류 관점에서 당시 유럽의 가장 높은 곳에 철도역을 만든다는 것은 당연히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과제가 아니었을까?
비슷한 예로 프랑스를 상징하는 철제 ‘에펠탑’도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야망으로 프랑스 엔지니어인 귀스타브 에펠이 뉴욕의 자유의여신상 건설에 이어 철제 건축물 구축에 도전했던 결과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은 에펠탑 이후 또다시 최고의 아성에 도전하여 구축된 건축물이다.)
• 연결을 넘어선 연방국가 통합의 수단, 철도
2023년 기준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약 95,490달러일 정도의 부자 나라이지만, 사실 알프스산맥의 험한 지형도 그렇고,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 민족국가가 아닌 독일, 프랑스, 이태리계 등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서 국가적인 통합과 발전이 쉽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만약 사람과 화물의 이동을 담당하는 철도와 같은 물류인프라가 없었다면 이런 부의 형성이 가능했을까? 물류인프라는 단순 연결을 넘어 각기 다른 연방의 ‘통합’을 이루는 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를 가면 도시 사람들의 언어가 독어에서 프랑스어로, 때로는 이태리어로 바뀌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런 다언어 환경에서 통합은 국가 발전의 초석이 아닐 수 없다.
재밌는 예로 스위스 연방 철도(SFR: Swiss Federal Railway)는 스위스 철도 공기업인데, 현지에서 보면 ‘SBB/CFF/FFS’로 쓰여있는 표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각각 SBB(Schweizerische Bundesbahnen)는 독일어, CFF(Chemins de fer fédéraux suisses)는 프랑스어, FFS(Ferrovie federali svizzere)는 이태리어로 스위스 연방 철도의 약자를 의미한다.
필자는 6~7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9개 도시를 여행했는데, 쾌적한 승차환경에 그림 같은 풍광을 바라보는 2시간 정도의 도시 간 이동에 불편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면서 느낀 생각이 우리나라도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은 편리하고, 빠른 이동수단이 무엇보다 우선한 전제조건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방문도시: 취리히, 루체른, 베른, 인터라켄, 로잔, 몽트뢰, 라퍼스빌, 베린초나, 루가노)
스위스 철도 인프라에 관련해서는 사실 소프트웨어인 SBB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다음 편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우리나라의 ‘코레일앱’과 같은 것으로 비교해 보면서 참고할 부분이 많다.).
물론 철도 중심의 물류인프라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고, 도시 자체의 확장에는 철도 중심 인프라가 한계가 있다고 한다.
예로 취리히의 집값은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인데(평당 7천만원 수준), 현재 철도 인프라 확대 없이 주택공급을 늘리면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그 원인이라고 한다(현재 신규 주택구매를 원하는 상당한 규모의 구매자 대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스위스엔 대도시에 왜 노숙자가 안 보이냐는 질문에, 노숙자가 살기에도 너무 비싼 물가 때문이란 지인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 물류는 그래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귀국날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이다.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 출국을 위해 지인의 루가노(Lugano) 집에서 SBB앱으로 확인한 기차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때, 지인이 갑자기 이태리 철도노조 파업으로 해당 기차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스위스인인 지인이 운전하는 차로 스위스-이태리 국경지역인 스타비오(Stabio)까지 와서, 그 국경도시에서 철도회사가 대절한 임시 버스로 갈아타고 밀라노역까지 도착하여 겨우 귀국 비행시간은 맞출 수 있었다.
당시 비행기 좌석이 군데군데 비어 있던 것이 아마도 파업 영향으로 탑승시간을 놓친 승객들이 아니었을까?
과거 삼성 직원으로 해외 사업장의 물류지원을 나갔을 때, 현지 파업으로 인한 주요 자재 공급 차질로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위기를 옆에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나 자신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니 과거의 기억이 또다른 느낌으로 회상되었던 것 같다.
여행기간 동안 SBB앱이 주는 정보에 의지해서 문제없이 일정을 다녔던 필자로서 미래에 아무리 AI가 고도로 발전한다 해도 물류는 결국 사람이겠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이태리에는 파업을 휴가 쓰듯이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니... 여행하시는 분들은 이런 점도 유념하시길 빈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