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비자금 쪽지 1장'이 불러온 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 후폭풍...최 회장 “반드시 진실 바로잡겠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비자금 쪽지 하나로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 재산분할 결정을 내린 항소심 후폭풍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 손을 들어준 1심 재판부와 달리 노 관장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 2심을 맡은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 재산은 대부분 SK㈜ 지분으로 1297만5472주, 17.7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 가치는 30일 종가 기준으로 2조812억원으로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재산을 노 관장에게 나눠주라는 판결인 셈이다.
이는 노 관장이 SK그룹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에 이바지한 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판결 이후 노 관장 기여도를 비롯해 자금 출처 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대법원에서 기여도와 자금 출처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에 노태우 전(前) 대통령이 사돈인 최종현 선대회장 등에게 300억원대 비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약속어음과 김옥숙 여사 메모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 메모에는 ‘선경 300억’, ‘최 서방 32억’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파악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메모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함께 김 여사가 보관해온 선경건설 명의 약속어음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요구하면 주겠다는 약속의 의미라고 반박했다.
통상 약속어음은 말 그대로 발행인(선경그룹)의 소지인(노태우)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았다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노 관장의 SK㈜ 기업가치 증가와 경영활동 기여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해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영향을 미쳤다”고 판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방의 메모 등을 핵심 증거로 판단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의구심을 제기한다. 최 회장 측에서도 6공 비자금 유입 및 혜택은 입증된 바 없으며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통상 가사 소송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기가 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산 형성·유지에 대한 이혼 당사자 행위를 따지는 과정에 ‘부모’라는 특수관계인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자금 출처와 기여도 판단이 주효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SK그룹도 최 회장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3일 항소심 판결이 최 회장 개인을 넘어 그룹 가치와 역사를 심각히 훼손해 룹 차원의 입장 정리와 대책 논의 등이 필요하다는 경영진들의 자발적 판단에 따라 임시 소집을 진행했다.
이날 최 회장은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과와 함께 내실 경영 등 매진해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개최된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SK와 국가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간 쌓아온 SK그룹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어 입장 발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일부 CEO(최고경영자)는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과거 정부 특혜가 있었다는 취지 판결에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 압력 때문에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어렵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법원은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SK가 성장한 것처럼 곡해했다”며 법원 판단에 대한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날 SK 경영진들은 구성원과 주주, 투자자,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 반응과 향후 경영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하고 대응책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우선 구성원들이 동요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SK 경영 안정성을 우려하지 않도록 적극 소통해 한층 돈독한 신뢰관계를 맺자고 다짐했다.
최창원 의장도 “우리 CEO들부터 솔선수범하며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기업 가치 및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해 나가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