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몰고왔네…그래도 반가운 저PBR 투자 열풍
정부 쏘아 올린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임박, 반기는 투자자
저PBR주 쏠림 당분간 이어질 듯, 코스피시장서 빚투 증가세
전일 코스피 2,640선까지 안착… 외국인 순매수 유입도 늘어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자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 기대감이 산재한 데다,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소식에 수혜가 예상된 ‘저PBR주’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달 우리 증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저PBR 투자 열풍이 부는 영향이다.
이에 당분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이 국내 증시를 이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 안팎으로는 저PBR 종목 위주로 외국인들의 수급이 유입된 것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가 다시 급증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8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10.74포인트(0.41%) 오른 2,620.32에 거래를 마쳤다.
설 명절을 끝낸 전일에도 코스피는 29.32포인트(1.12%) 상승한 2,649.64에 안착하며 장을 끝냈다. 정부의 기업 가치 제고 프로젝트 추진이 임박하자 증시가 더 들썩이는 모습이다.
정부의 저PBR 대책에 대한 외국인의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린 셈이다. 이달 들어 지난 8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코스피에서 4조4543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을 정도다. 특히 지난 1~2일 이틀 사이에만 3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의 매수세는 현대차와 기아, 삼성물산, KB금융, 하나금융지주 등 저PBR 종목에 쏠렸다. 외국인 매수세에 지난 8일까지 삼성화재(38.17%)가 가장 많이 올랐고 한미반도체(33.73%)와 현대차(33.48%), 삼성물산(30.05%) 등이 크게 뛰었다.
상황이 이렇자, 상승장에서 소외돼 나만 돈 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이른바 ‘포모’(FOMO) 심리가 가세해 매수세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빚투’(빚내서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의 신용거래융자 규모는 9조4510억원으로 지난해 말(8조7338억원) 대비 7172억원(8.2%) 늘었다.
신용융자잔고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고 남은 돈을 말한다. 이 잔고가 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 반도체주를 비롯해 저PBR 종목으로 분류되는 자동차와 금융주의 신용잔고가 일제히 늘어났다.
현대차와 기아의 외국인 매수세가 많았던 만큼 신용융자잔고도 불었다. 현대차의 신용잔고는 1454억5000만원(8일 기준)으로 지난해 말(880억4000만원) 대비 65% 증가했고, 기아도 1085억원으로 지난해 말(490억6000만원) 대비 121% 급증했다.
KB금융과 신한지주 등 금융·지주사 신용잔고도 올 들어 각각 113%와 178% 불어났다. 반도체 종목 중 삼성전자 신용잔고는 지난해 말 대비 42% 늘었으며, SK하이닉스는 70% 증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PBR이 1.48배로 1배는 넘지만 성장성에 비해 대표적으로 저평가받는 주식으로 분류되면서 빚투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지난 7일 기준 4004억7200만원으로 올해만 1200억원(42%) 이상 늘었다. SK하이닉스도 이 기간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425억4600만원에서 2437억6100만원으로 71% 치솟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 장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에 저가 매수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차전지 종목의 신용잔고는 전기차 업황 둔화 우려 등에 일제히 감소하는 등 저PBR주 종목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투자자 예탁금도 증가세다.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 쌓아둔 증시 대기성 자금이다. 연초 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면서 예탁금도 빠졌지만, 정부가 밸류업 도입을 시사한 지난달 24일만 1조598억원 증가했다.
그만큼 저평가주 주가 부양 기대감에 투자 실탄을 장전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게 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기업의 주가 부양책이 공개되면 예탁금뿐 아니라 빚투 현상도 더 늘 거란 의견이다.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은 곧바로 주주환원 정책으로 향했다. 기업은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은행권을 중심으로 주주환원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사도 저PBR주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이 포착된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7일 저PBR주 성과 요인을 분석한 리포트를 발간했다. 이정빈 수석연구원이 작성한 ‘저PBR주 성과 요인 분석’ 리포트는 한국과 일본 사례를 비교해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그는 기존 한국 증시 저평가를 야기한 더블카운팅(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할 때 기업가치가 중복되는 현상) 이슈와 코스피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주주환원 기대감에 비롯된 대형 가치주 상승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주주환원 현황 및 거버넌스 점수와 2024년 행동주의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 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시발점이다”며 “앞으로 주주환원과 소액주주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본 유출입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개인의 ‘빚투’도 늘어나면서 투자에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저PBR주가 테마주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단기간에 과열된 측면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다.
전문가는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나 자금 이탈 등의 변동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창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설 연휴 이전 공격적인 외국인 투자자의 저PBR주 순매수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며 “같은 저PBR주 중 주가가 상승한 종목과 하락한 종목의 차이는 재무건전성으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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