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부산 이전 재점화...여당 ‘최우선 과제’ 설정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이슈가 재부상하고 있다. 여당이 산업은행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지목한 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지원사격에 나서면서다. 오는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마지막 관문인 ‘법 개정’ 향방도 좌우될 전망이다. 산업은행 노조는 부산 이전을 총력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17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일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한국산업은행법(개정)이 국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적 유불리,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 미래를 위한 길을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부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대단히 높은 최우선 순위 과제고, 반드시 내려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나온 발언이라 주목된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전 공공기관 지정·고시 등 행정적 절차는 단계적으로 마무리됐지만 본점을 ‘서울에 둔다’에서 ‘부산에 둔다’고 바꾸는 산업은행법(제4조 제1항)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물리적 시간 부족으로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왔는데, 최근 여권에서 산업은행 법 개정 의지를 다시 키워가고 있다. 특히 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부산 민심 잡기에 산업은행 이전 이슈가 활용되는 모양새다.
산업은행법 개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단기간 내 처리되긴 어렵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연내 통과 가능성은 열려있다. 22대 국회 편성으로 법안이 폐기되더라도 같은 내용을 재발의할 수 있고, 여야 합의만 이뤄진다면 통과는 시간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부산 이전 이슈가 재점화하면서 산업은행 노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경제적 효과 미비와 기업금융 역할 제한, 금융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을 앞세워 저지에 나섰는데, 최근 여당의 부산 이전 의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조직은 이미 동요하고 있다. 뉴스투데이가 산업은행 노조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행원·대리급인 5급 퇴사자는 40명으로 2021년(12명)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과장·차장급인 4급 퇴사자 역시 같은 기간 8명에서 18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87명(정년퇴직 제외)이 산업은행을 떠났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대선 당시 후보였던) 윤 대통령이 부산 선거 유세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얘기했고, 그 이후로 퇴사자가 급격히 늘었다”며 “특히 실무자급(4·5급) 퇴사자가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그간 본점 1층에서 부산 이전 저지 투쟁을 펼쳐왔는데, 최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과 국민의힘 당사 등 외부로 범위를 넓혔다. 또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반대 뜻을 가진 정치인과의 접촉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국가 금융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국책은행을 특정 정당, 특정 지역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며 “산업은행법 개악을 반드시 저지하기 위해 모든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 총력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연내 산업은행법 개정이 이뤄지고, 산업은행 본점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국책은행 연쇄 이전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말 대구광역시는 IBK기업은행 본점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물품 리플릿과 포스터를 배포했고,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수출입은행 이전 필요성도 제기된 바 있다.
금융권에선 국책은행 이전 문제가 경제적 실효성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적 이벤트에 휩쓸려 다니는 걸 경계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이슈로 지방 균형 발전 얘기가 나오면서 국책은행 이전도 떠올랐는데, 표퓰리즘 정책인 것 같다”며 “실제 이전을 통한 베네핏(이득)이 없이 추진하면 분명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