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107)] 방공유도탄여단장 (17) 우드 7공군사령관과 워싱턴에서 점심식사를 한 까닭
최환종 전문기자 입력 : 2023.08.07 11:36 ㅣ 수정 : 2023.08.08 15:24
필자가 공작사 방공포병처장으로 근무할 때 우드 장군은 7공군사령관겸 공군구성군사령관 덩치 큰 픽업 트럭을 몰고 온 우드 장군은 필자의 경례를 받으면 환하게 미소지으며 귀가
[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필자가 공작사 방공포병처장(대령)으로 근무할 당시에 우드(Wood) 장군은 7공군 사령관/공군구성군사령관으로서 연합 훈련시에 상황보고 시간에나 볼 수 있었는데, ADEX 기간중 성남 비행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우드 장군은 사진에서 보듯이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얼굴이다(한국군 장교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는데, 미 공군 장교들은 우드 장군을 무서워했다는 얘기를 가끔 들었다). 7공군 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에 우드 장군은 주말 아침에 기지 내에서 산책을 자주했었고, 산책 경로에는 골프장 주변 도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필자가 오산 기지내 골프장에서 골프를 할 때 골프장 근처로 지나가는 우드 장군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군 장교들은 우드 장군에게 “Good morning, Sir!” 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었고, 우드 장군은 환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오산 기지내의 골프장은 부대내 도로와 인접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과 골퍼들이 서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가끔 초보 골퍼가 공을 잘못 쳐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 쪽으로 공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오산 골프장 코스는 결코 쉽지 않다. 필자가 오산 골프장에서 기록했던 최고의 점수는 77타였다.)
필자가 대령일 때에도 우드 장군은 할아버지 같은 인상(그러나 눈매는 날카로웠다)이었다. 시간이 흘러 민간인 신분이 된 우드 장군을 만나보니 7공군사령관 시절의 날카롭던 눈매는 사라지고 이제는 정말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필자를 대하고 있었다.
예전의 공군구성군사령부 시절로 돌아간 필자와 우드 장군은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드 장군 본인은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으니 미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하며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This is an order, General. Choi”. 필자도 웃으며 대답했다. “Yes, Sir!”
우드 장군과 필자는 각각 미 공군 예비역 장군과 한국 공군 장군이지만 공군구성군사령부에서 같이 연합작전을 수행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명령 아닌 명령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필자는 전역식 후에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차 미국에 갔다가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에 관광차 갔었고, 워싱턴에 가기 전에 우드 장군에게 “본인은 다음 주에 가족 여행차 워싱턴에 갈 예정입니다. 시간 되시면 차 한잔 하시지요.”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우드 장군은 “다음 주, 0요일 점심때 워싱턴의 00부대 장교클럽에서 만납시다”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워싱턴 여행 중에 필자는 00부대 장교클럽에서 우드 장군을 만나서 점심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또 우드 장군이 오산 기지에서 필자의 직속상관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공통의 임무를 수행한 장교들이었기에 이런 자리가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드 장군은 필자에게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하고 물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기를 기원한다고 덕담을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필자와 우드 장군은 세상사는 얘기를 하며 장교클럽 주차장까지 걸어갔고, 필자는 먼저 출발하는 노(老) 장군에게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덩치 큰 픽업 트럭을 몰고 온 우드 장군은 필자의 경례를 받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필자는 다시 가족과 합류하여 워싱턴 여행을 계속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現 국립한밭대학교 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